[윤덕노의 음식이야기]
<28> 계란
봄의 시작과 부활을 상징하다
부활절이면 교회에서 계란을 나누어 준다. 보통 알록달록 색칠을 해서 주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대부분 예수의 부활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부활절에 왜 계란을 먹으며 색칠은 왜 하는 것일까. 서양에서 부활절에 계란을 먹는 풍습은 유래가 다양하고 복잡하다. 관련된 설도 여럿이 있지만 근거가 희박하거나 억지로 꾸민 느낌이 역력한 것을 빼면 대체적으로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부활절 직전의 사순절 금식에서 유래한 풍습이라는 것과 고대 봄 축제에서 비롯된 풍속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두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활절 바로 전 기간인 사순절은 영어로 렌트(Lent)다. 어원을 두 가지로 보는데 고대 그리스어를 뿌리라고 보면 40일이라는 뜻이고, 고대 영어를 어원으로 보면 봄이라는 뜻에서 생긴 단어다. 둘 다 부활절 계란의 유래와 관련이 있다.
먼저 사순절은 예수가 광야에서 받았던 고난을 회상하며 40일 동안 금욕하고 속죄하는 기간이다. 예전에는 사순절에 철저하게 금욕을 하면서 동물의 고기와 지방이 포함된 음식을 먹지 않았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고기, 계란, 유제품을 피했다. 그러다 부활절부터 다시 계란을 먹으니 사순절이 지나 절제의 기간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사순절 어원의 다른 의미인 봄의 축제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다. 고대인은 봄에 만물이 소생하는 것은 겨울에 죽었던 태양이 부활해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또한 계란은 새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고 죽었던 생명이 계란을 통해 부활한다고 생각했다.
봄이 태양의 부활이라는 의식은 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저의 저서, ‘황금가지(The Golden Bough)’를 비롯해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널리 볼 수 있다. 계란이 생명 탄생의 근원이고 부활의 상징이라는 것 역시 고대인의 보편적 믿음이었다.
태양의 부활을 축하하며 계란을 먹었던 고대 봄 축제의 의식과 사순절 기간의 금욕이 풀린 것을 축하하는 의미가 어우러지면서 부활절이면 계란을 선물하고 나누어 먹는 풍속이 생겼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봄을 축하하고 부활을 기념하며 계란을 먹는 것이 서양의 풍속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동양에서도 봄이 온 것을 축하하며 계란을 먹었다.
7세기 무렵 중국 양쯔 강 중류 지역의 풍속을 기록한 책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인데 정월 초하룻날 가족이 의관을 단정하게 차리고 조상께 제사를 지낸 후에는 술과 엿과 오신채를 먹는 한편으로 사람마다 계란을 한 개씩 먹는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면서 3세기 문헌인 ‘풍토기(風土記)’를 인용해 새해 아침에 계란을 먹는 것은 몸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같은 시대 학자인 갈홍은 새해에 계란과 팥을 먹으면 나쁜 기운을 막고 전염병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정월 초하루, 그러니까 설날은 바꿔 말하자면 봄이 시작되는 날이다. 때문에 중국식 이름은 춘제(春節)라고 한다. 고대 서양에서 봄 축제 때 계란을 먹으며 봄이 온 것을 축하한 것처럼 동양에서도 새해 첫날 계란을 먹으며 새봄을 맞이했던 것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