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
<36> 수박
‘금덩어리 수박’ 너무 비싸 아무나 못먹었다
“수박 한 통 값이 쌀 다섯 말.”
요즘 시세가 아니라 세종 23년(1441년) 때의 가격이다. 엄청나게 비싼 것 같은데 당시 물가를 알 수 없으니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해서 속담을 인용해 보면 ‘섬 처녀 시집갈 때까지 쌀 한 말을 못 먹는다’고 했다. 섬 아낙이 평생 먹는 쌀보다 수박 한 통 값이 더 비쌌던 것이다. 그러니 수박이 아니라 금덩어리다. 믿지 못하겠으면 세종실록 23년 11월 15일자 기록을 보면 된다.
지금은 수박이 흔한 과일이지만 조선 초만 해도 수박을 훔쳐 먹다 곤장 맞고 귀양을 가거나 심지어 수박 때문에 목숨을 잃은 정승도 있었다.
금덩어리처럼 비싼 수박이었으니 우리나라 역사에서 위대한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마저도 수박도둑만큼은 참기가 힘드셨던 모양이다. 세종 5년, 주방에서 일하던 한문직이라는 내시가 수박을 훔쳐 먹다 들켰다. 곤장 100대를 맞고 귀양을 갔으니 죽도록 맞은 셈이다. 세종 12년에도 궁중에 물품을 공급하는 내섬시 관리가 수박을 훔쳐 먹었다가 곤장 80대를 맞았다.
수박을 빌미로 부관참시를 당한 사람도 있다. 사헌부 관헌 김천령이다. 연산군은 “내가 일찍이 중국의 수박을 보고 싶어 했는데 (김)천령이 강력하게 주장해 막았다. 임금이 다른 나라의 진귀한 물건을 구하겠다는데 신하가 어찌 감히 그르다고 말하는가. 천령을 효수하여 전시하고 그 자식을 종으로 삼으라”고 명령한다. 이미 죽은 김천령을 또 죽이라고 한 것이니 무덤을 파내어 죽은 사람의 목을 베는 부관참시의 형을 받은 것이다.
연산군일기 10년의 기록인데 김천령을 부관참시한 까닭은 폐모 윤씨의 복위와 얽힌 갑자사화와 관련이 있지만 명분은 수박을 꼬투리로 삼았을 만큼 수박은 소중한 과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