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해적 자식이야?” 아들말에 눈물 뚝뚝
기사입력 2012-03-10 03:00
“고대녀, 나는 해적이 아니다” 제독의 눈물
천안함 유족 등 분노… 해참총장 명예훼손 고소
해군기지 펜스 절단기로 뚫고 난입 29명 연행
“나는 해적이 아니다”
초대 잠수함 전단장을 지낸 김혁수 예비역 해군 준장이 9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통합진보당 당사 앞에서 김지윤 청년비례대표
경선후보가 제주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라고 표현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해군은 9일 최윤희 참모총장 명의로 김 후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해군은 고소장에서 “이 사건(해적기지 발언)의 트위터상 게시물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소인(해군참모총장) 등 전체 해군 장병을 비방할 목적으로 악의적으로 쓴 글”이라고 비판했다. 또 “해군은 1945년 조국의 바다를 우리 손으로 지키자는 신념으로 창설한 이래 지금까지 충무공의 후예라는 명예와 긍지를 안고 해양주권을 수호해왔다”며 “김 후보는 해군 장병의 고결한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하고 모욕했다”고 주장했다.
예비역 장성 등 군심(軍心)도 들끓고 있다. 김성찬 전 해군참모총장, 김혁수 전 해군 제독, 이정국 ‘천안함 46용사 유족협의회’ 자문위원 등 100여 명은 이날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통합진보당사를 항의 방문했다. 이들은 진보당 측으로부터 “당사에 아무도 없다”는 답변을 듣고 국회로 발걸음을 돌린 뒤 진보당 당직자들과 만나 이정희 공동대표와 김 후보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김 전 총장은 “오늘 한 후배 지휘관이 출근하면서 아들로부터 ‘아빠, 내가 해적 자식이야?’라는 말을 듣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는 얘길 들었다”며 “이게 뭐하자는 것이냐. 대한민국을 없애자는 게 아니고선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지 개탄스럽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아무리 생각이 다르더라도 어떻게 군을 해적으로 매도할 수 있느냐.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라며 “후보직 사퇴 등 김 후보에 대한 조치 및 재발 방지책을 10일 정오까지 알려 달라”고 말했다. 이들은 해군과는 별도로 김 후보에 대한 고소고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내가 해적 자식이야?” 아들의 말에 해군 아빠 눈물 뚝뚝 ▼
국방부도 김 후보를 재차 압박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가 제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을 해적기지로 표현한 데 대해 강하게 유감을 표한다”며 “해군을 비롯해 대한민국 국군과 장병, 가족들을 모욕한 데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군 ‘고대녀’ 고소 해군은 9일 ‘해적기지’ 발언과 관련해 통합진보당 김지윤 청년비례대표 후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해적기지’ 발언의 역풍이 거세지자 논란의 당사자인 김 후보는 “해군 사병에 대해 해적이란 표현을 쓴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김 후보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강정마을 주민들과 문정현 신부가 정부와 군 당국이 하는 일에 대해 해적이라는 표현을 썼고, 주민들의 울분에 공감한 저 또한 이곳에서 벌어지는 행위에 빗대어 그런 표현을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제 동생이 해경 출신인데 제가 왜 해군 사병들에 대해 그런 표현을 쓰겠느냐”며 “국방부 당국이 제 발언을 빌미 삼아 (구럼비 해안 발파에 따른) 비난 여론을 반전시키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후보는 이날 강정마을 현장을 찾아 “해군기지 건설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문제인 만큼 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힘을 모을 생각”이라며 계속해서 반대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도 김 후보를 거들었다. 나꼼수 멤버인 김용민 씨는 이날 트위터에서 “김지윤 씨가 쫄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지윤 님, 기득권 세력이 님의 발언에 성화인 이유는 내부 단속을 위함입니다. 소신껏 하고 싶은 말 다 하세요”라고 지지했다. 민주당은 김 씨를 나꼼수 멤버 정봉주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서울 노원갑에 전략공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는 ‘해적기지’ 논란의 확산을 경계하고 나섰다. 이 논란이 보수층을 결집시켜 총선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는 이날 라디오에서 해적기지 발언에 대해 “적절치 못한 표현으로, 정당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합리적이고 적절한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한명숙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거듭 주장하면서도 ‘해적기지’ 발언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건설반대 시위대 울타리 부수고 공사현장 진입 3일째 발파작업이 실시된 9일 오전 10시경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현장에서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울타리를 뜯고 있다. 이들 중 29명은 구럼비 해안으로 들어가 불법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서귀포=연합뉴스
한편 해군기지 관련 ‘공유수면매립공사 정지를 위한 행정명령’을 사전 예고한 제주도는 20일 해군을 상대로 청문을 실시할 계획이다. 해군 측은 한국해양대에서 제출받은 ‘선박조종 시뮬레이션’ 자료 등을 제시하며 행정명령의 부당성을 밝힐 예정이지만, 제주도는 청문 직후 의견검토 등을 거쳐 이르면 22일 공사정지 행정명령을 내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 관계자는 “행정명령이 내려지면 일단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며칠 동안 공사가 멈출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행정명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의 조치를 통해 계속 공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해군기지 울타리를 뚫고 구럼비 해안으로 진입해 항의 시위를 벌인 천주교 문규현 신부 등 29명을 연행했다. 이들은 해군기지 서쪽 펜스를 절단기 등을 이용해 지름 50∼100cm의 구멍을 내고 들어간 혐의를 받고 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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