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하태원]
햇볕도 압박도 不通인 북한
기사입력 2012-03-19 20:32
하태원 논설위원
훗날 이 전 장관은 “남북 관계는 한번 깨지면 좀처럼 복원되기 어렵다. 어려울수록 대화를 해야 하고 미사일 발사에 대한 북한의 해명과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사과는커녕 “선군(先軍)정치가 남측의 안전을 지켜 준다”며 “100여 년 전에 화승총이 없어 조상들이 망국조약을 강요당했다”는 망언(妄言)을 늘어놓았다. 회담은 깨졌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일본이 내놓는 10개의 제재보다 한국이 쌀 지원을 끊는 게 더 효과적”이라며 쌀 50만 t 지원을 지렛대로 북한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민족 공조 기대는 환상이고 착시였다. 이종석은 결국 3개월 뒤 북한의 1차 핵실험 후 대북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통일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김대중-노무현 10년을 이어온 ‘햇볕정책’이 사실상 종언(終焉)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선군보국’ 같은 황당한 궤변을 들으려고 회담했느냐는 비판에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다만 6년 전 통일외교안보 라인이 백방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를 막으려고 했던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신언상 전 통일부 차관은 “남한의 정책에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부 들어 북한에 의사를 전달할 수단마저 사라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도 “강석주-김계관 등 대미(對美) 협상라인을 통해 장거리 로켓 발사의 득실(得失)을 따져볼 수 있는 논의의 장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대화에 이은 6자회담 수석대표 이용호의 뉴욕 방문으로 미국과 밀월(蜜月) 관계처럼 보였던 북한이 보름 만에 합의를 뒤집는 일련의 움직임에서 한국 정부는 배제돼 있는 것 같다.
북한은 이명박(MB) 정부 출범 이후에도 2009년 4월 장거리 로켓인 ‘광명성 2호’를 쏘아 올렸고 한 달 뒤에는 2차 핵실험까지 감행했다. 북한의 악행(惡行)이 이어질 때마다 미국과의 ‘찰떡 공조’ 태세에 따른 대북 제재의 강도는 높아져 갔고 ‘북한의 협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원칙론이 더욱 힘을 얻었다. 역사가 MB의 대북정책 원칙 고수를 최대의 성과로 기록할 수도 있지만 재임 4년 동안 대북 관계에서 가시적인 진전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제 정부가 이 대통령 주재로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열고 ‘광명성 3호’에 대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해 핵무기 장거리 운반수단을 개발하기 위한 중대한 도발행위”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미 2중, 3중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새로운 제재에 얼마나 아파할지 모르겠다.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을 말로 때리는 것 말고 정부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무력감도 존재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올해 선거에서 진보진영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북한이 남북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북한 문제를 포기했다는 말처럼 들린다.
10년의 햇볕이 북의 핵 외투를 벗기지 못했고 그 대안으로 나온 압박정책 역시 북의 악행을 길들이지 못한 채 용도 폐기될 상황이다. 그 사이 북한의 핵 보유량은 늘어가고 있고 3대 세습의 학정(虐政)을 견디지 못한 탈북자의 행렬이 길어지고 있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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