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3·1 독립혁명일

namsarang 2015. 3. 1. 15:14

[생활 속의 복음]

3·1 독립혁명일

 

 

사순 제2주일(마르 9,2-10)


 

▲ 박재식 신부

(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어느덧 해가 바뀌고 희망의 봄이 찾아왔습니다. 새로운 생명의 축제를 여는 때입니다. 신명나는 잔치를 벌여야 하는 오늘, 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100년 가까이 기념하고 있는 ‘3ㆍ1 독립혁명일’(96주년)이 됐지만 아직도 우리는 서로 갈라져 있으며,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외국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과 반감을 갖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3ㆍ1혁명’은 전 세계, 우리 민족 역사에 크나큰 획을 그은 사건이라 생각해 ‘혁명’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자유, 평등, 존엄의 정신으로 ‘조선 독립!’이 아닌 ‘대한 독립!’을 외치며 소수의 지도자나 단체가 아닌 남녀노소, 가진 자와 가난한 이 등 모든 백성이 참여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이들은 ‘조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조선노동당’, ‘조선의용군’처럼 말입니다. 그에 반해 자유주의(자본주의) 사상을 지닌 이들은 ‘대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어찌 보면 모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이들의 평등을 주장하는 이들이 신분제 사회를 근본으로 했던 ‘조선’이라는 국가 명칭을 사용하고 있고(북한), 자주 독립을 외치는 이들은 서구열강에 권리를 빼앗기고 고통받던 시대의 국가 명칭인 ‘대한’(남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 의문입니다.

이런 ‘이념’과 ‘실질’의 모순을 갖고 서로가 한 치 양보도 없이 각자의 가치관을 통해 상대를 바라보기 때문에 남북, 동서, 빈부, 도농 간 골이 깊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철학자 에드먼드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우리의 의식은 항상 어떤 대상을 향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대상 역시 의식을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대상으로 다루어질 수 없다”라는 인식론을 토대로 상대의 생각과 의견을 인정하면서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갈등을 풀어가는 첫 단계라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은 배려와 관계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신앙 고백과 십자가의 고통을 설명하신 후 거룩한 변모를 통해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사랑으로 새로운 운명 공동체를 만들어 주셨고, 세상에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제자들을 초대하셨습니다. 그에 반해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내려올 때 백성들에게 주어진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하느님과 백성의 관계를 단절하려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사람들을 만납니다(탈출 34,34). 모세는 단절과 폐쇄적인 방법으로 ‘관계의 하느님’보다 초월적이며 권능을 지니신 하느님을 나타냅니다.

가끔 본당 어르신들에게 “인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이나 후손에 권할 수 있는 우리나라 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하고 질문합니다. 저는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목민심서」를 첫 번째,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를 두 번째 자리에 놓습니다. 이유는 지도자 혹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국민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조건과 방법, 그들이 지녀야 할 마음 자세를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 신자분들께서도 내년 4월 실시되는 총선 전까지 지도자의 덕목을 알 수 있는 「목민심서」를 한 번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백범일지」에는 김구 선생님과 윤봉길 의사(1908~1932)와의 대화, 의거 당시 25세였던 윤 의사가 젖먹이 두 아들에게 쓴 편지가 있습니다. ‘3ㆍ1 독립혁명일’을 맞아 윤 의사가 남긴 편지를 소개하여 드립니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너희가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아라. 그리고 너희들의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론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론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신 예수님, 그리고 자긍심을 주신 독립투사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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