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대한민국 제1호

1966년 약탈 문화재 일본서 첫 환수

namsarang 2009. 9. 29. 23:28

[대한민국 제1호]

1966년 약탈 문화재 일본서 첫 환수

 

1966년 5월 27일 일본이 약탈해 간 우리 문화재가 김포공항을 통해 돌아왔다. 도자기·석조미술품·고문서 등 모두 1326점이나 됐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 강점기 동안 수탈당한 문화재들이 해방 21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최순우 당시 국립박물관 미술과장이 실무적인 문화재 감정과 조사를 맡았다. 당시 정부 간 협상을 통해 문화재가 환수된 첫 사례로,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한·일 협정(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반환 문화재 중 조선총독부에 의해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으로 반출되었던 '경남 창녕 교동 고분군 출토품' 106점은 회담 기간 중인 1958년 4월 16일에 미리 주일 한국대사관에 넘겨졌다.

이때 반환된 문화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보물 452호 청자 거북모양 주전자(청자귀형수주·靑磁龜形水注·고려 12세기)다. 연꽃 위에 거북이 앉아 있는 모양으로, 고려청자 명품의 하나로 꼽힌다. 약탈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로 알려져 있다.

보물 452호 청자 거북모양 주전자(청자귀형수주·靑磁龜形水注·고려 12세기·왼쪽 사진),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 제124호·오른쪽 사진).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 제124호)도 이때 돌아온 문화재 중 하나다. 영동 지방에서 출토되는 대리석으로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 불교조각사에서 귀한 자료로 평가되는 불상이다. 보살상의 바닥에는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의 관리번호 흔적이 남아 있다.

한국 정부는 당시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반출해 간 고분 출토품과 일본인이 약탈해간 문화재 등 4479점의 문화재 반환을 요구했다. 대상은 조선에 통감부가 설치된 1905년부터 1945년 사이에 약탈해 간 문화재. 그러나 일본은 국·공유 문화재 1432점만 반환했다. "민간 소유에 대해서는 정부가 자발적으로 기증하도록 권장하겠다"는 것이 일본의 입장이었지만, 그뿐이었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해외에 반출되거나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는 7만6134점이다. 임진왜란·병인양요 등 외침과 일제 강점기, 6·25전쟁과 같은 혼란기를 틈타 도굴과 강탈·매매 등 다양한 경로로 문화재가 빠져나갔다.

한국은 지금까지 10개국에서 8155점을 돌려받았다. 일본에서 환수된 것이 5102점으로 가장 많고, 미국(1233점), 스페인(892점), 독일(657점), 뉴질랜드(186점) 순이다. 정부 간 협상에 의한 환수는 1729점이고 기증에 의한 환수가 5844점, 그 외 국·공립박물관이나 민간에 의한 구입이 582건이다. 정부의 적극적 노력보다는 외국의 기증이나 민간 차원의 구입에 의한 문화재 환수가 더 많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