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테레라이 트렌트(Trent)
11세에 결혼해 폭력남편·다섯명 아이와 극빈생활
"공부하고싶다" 미국행… 11년만에 결국 박사학위
짐바브웨에서 태어난 테레라이 트렌트(Trent)는 열한살 때 아버지의 강요로 결혼했다. 초등학교 과정은 1년을 채 못 다녔다. 매일 계속되는 남편의 주먹질을 견디며 아이 다섯을 낳았다. 스무살이 넘을 무렵, 그녀가 살던 마을로 국제 구호단체 '하이퍼 인터내셔널'이 찾아왔다. '하이퍼'는 "여성도 꿈을 가져야 한다"고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테레라이는 "공부를 많이 해서, 박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기 시작했다.'하이퍼'에서 일하게 된 그녀는 일당으로 받는 돈을 한푼 두푼 모았다. 꾸준히 읽고 쓰는 교육도 받았다. 1998년 오클라호마주립대에서 입학허가서가 날아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려는 테레라이에게 남편은 "나도 같이 가야 허락하겠다"고 고집했다. 테레라이의 모친은 소를 팔고, 이웃은 염소를 팔아 4000달러를 모아줬다. 그는 스타킹에 돈을 숨겨 허리에 두르고,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렇게 시작한 미국 생활은 악몽이었다. 빈둥거리는 남편은 다시 테레라이를 때렸고, 배고픈 아이들은 밥을 달라고 졸랐다. 테레라이는 임시직 일자리를 여러 개 뛰면서 빨래도 하고 청소도 했다. 수업도 꼬박꼬박 들었다. 학비를 못 내 퇴학당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대학 관계자들이 모금해서 도와주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학사 학위를 받을 무렵, 짐바브웨로 강제 송환됐던 남편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테레라이는 자신을 구타했던 남편을 미국으로 불러 돌봤다. 그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테레라이는 내달 웨스턴미시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논문 주제는 아프리카의 에이즈 예방 정책. 오클라호마에서 만난 병리학자인 마크 트렌트(Trent)와 재혼도 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니콜러스 크리스토프(Kristof)는 15일자 칼럼에서 "불가능한 꿈을 현실로 이룬 테레라이는 나의 영웅"이라며 "테레라이 개인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해외 원조기관의 도움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소개했다.
입력 : 2009.11.16 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