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카 신비를 묵상하는 작은 방
'감실'은 본래 도교와 불교에서 사용되던 용어다. 사당 안에 신주(神主)나 부처상 등을 모셔두는 장(欌)을 가리키는 말인데,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는 이 용어를 받아들여 예수님 몸인 성체를 모셔두는 작은 방을 감실이라 부른다. 감실의 의미와 위치 교회에서 감실의 위치와 활용에 대한 정확한 문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3세기 중엽 죽기 직전에 있던 어떤 신자가 한 젊은 사람이 사제에게서 받아온 성체를 영했다는 이야기를 통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7~8세기에 이르러 성체가 제의방에 보관되고 있었다는 일부 교회 문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축성한 빵을 쉽게 보관하는 곳으로 제의방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13세기에 들어오면서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보다 실제적이고 벽면에 붙은 감실이 등장하게 된다. 안전성을 고려한 이 벽면 감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후로 교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예술적이고, 또 신자들에게 더 가까이 보이기 위해 벽에서 분리시켜 "가능하면 성당 안이 아니라 따로 경당을 만들어 거기에 감실을" 자리잡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간 확보가 어렵다거나 어떤 특별한 사정으로 경당을 마련할 수 없을 때 차선책으로 성당 안의 뛰어난 자리에 모시라고 교도권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뛰어난 자리"가 성당의 중앙 위치, 즉 제대의 존엄성을 해치는 자리가 아님은 분명하며, 제대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성체의 존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용하면서 기도 분위기를 돋울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감실은 성체를 모셔두는 자리다. 성체를 따로 모시는 까닭은 병자에게, 어떤 사정으로 인해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는 신자에게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서이다. 나아가 미사 때 신자들을 위해 충분한 제병을 준비하지 못한 경우를 대비해, 또한 미사 때 남은 성체를 보관하기 위해서도 감실이 이용된다. 물론 중세 이후 내려온 관습에 따라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흠숭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하지만 감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 위에서 거행되는 성찬례와 그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파스카 신비를 신자들에게 상기시키는 데 그 본래 목적이 있다. 이 말을 달리 하면, 제대와 연계되지 않은 감실, 성찬례와 상관없는 감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감실이 신자들의 눈을 제대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감실의 본래 존재 목적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감실 앞에 앉는 것은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기 위함이다. 성당 구조는 신자들의 신앙을 올바로 이끌 수 있도록 잘 준비돼야 하며, 제대와 감실 사이에서 혼동을 겪지 않도록 감실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감실이 있는 경당을 제대 근처에 마련해 사제가 쉽게 감실 경당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미사 중 성체를 가지러 가거나 남은 성체를 다시 갖다 놓을 때 불편을 겪지 않을 것이며, 신자들은 성당 안의 넓은 공간보다는 아늑한 분위기의 경당에서 더 쉽게 성체조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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