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상담

(31) 성경 묵상이 어려워요

namsarang 2009. 12. 5. 16:52

[아! 어쩌나?]

(31) 성경 묵상이 어려워요



Q. 성경 묵상이 어려워요

 그동안 냉담하다가 다시 성당에 다니면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려고 성경 묵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말씀은 참 좋은데 어떤 말씀은 마음에 심한 부담이 돼 과연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주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제가 신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의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성당에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A. 옛날 신앙인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로지 주님만을 섬기려면 수도원 같은 곳으로 들어가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사막으로 들어가 수도생활을 한 분들도 적지 않은데 현대신학에서는 굳이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주님 말씀을 마음 안에 간직하고 산다면 즉, 내 마음을 수도원으로 만들면 수도자적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 묵상이 강조되는 것이지요. 성경을 가까이하면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가장 좋은 것은 인생을 살다가 막막한 지경에 처했을 때 기도하면 그동안 묵상했던 성경 구절 중에서 그 시점에 가장 적절한 구절이 떠올라 마음에 힘을 주고 위안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체험은 매일 성경 묵상을 하는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 말씀은 우리 인생길에 등댓불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 묵상을 하면서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성경은 하느님 말씀이지만 우리가 그 말씀을 온전히 따라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참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즉, 성경 말씀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지만 완전하게 따라 살기에는 우리 자신이 너무 나약합니다. 왜냐면 사람 마음은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상처를 입고 회복되지 않았거나 혹은 감당하기 어려운 콤플렉스에 치어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자세히 읽어보면 주님께서 이런 부분에 대해 배려를 하셨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용적 수준이 다른 말씀을 하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치 초보자와 선수급인 사람에게 각기 다르게 지도해야 하는 것처럼, 주님께서도 그렇게 사람에 따라 다른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음이 심약하고 힘겨운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는 "구하라 받을 것이다" 또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등 말씀을 해주십니다. 내적 힘이 고갈된 사람에게는 힘을 얻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내적으로 비교적 건강한 제자들에게는 좀 더 수준 높은 영성생활을 할 것을 주문하십니다.
 
 "가진 것을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 혹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네 원수를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거라" 등 말씀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내적 건강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칫 자기비하감과 실망감에 빠질 우려가 큽니다.

 옛날 어떤 수도자가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이 영 불경스럽게 여겨져 수도원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고는 원장수사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들은 원장수사가 모든 수도자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을 하더랍니다.
 
 "형제 여러분 여기 우리 형제가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은 수도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수도원을 나가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 역시 주님 말씀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했는지라 저도 보따리를 싸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원장수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든 수사가 "저희도 모두 주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인지라 이 수도원에 살 자격이 없습니다. 저희도 모두 보따리를 싸겠습니다"하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그제야 원장수사가 젊은 수사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잘 보았지? 자네나 우리나 다 같은 사람들이네. 우리가 주님 말씀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더라도, 주님께서는 늘 우리를 받아주신다고 믿고 여기가 집이라 생각하고 편안히 사시게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성경을 묵상한다는 것은 부모님 가르침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부모님 말씀에100% 따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하느님 앞에서는 피조물이고 아이들이기에 하느님 말씀을 온전히 실천하면서 사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듭니다.
 
 따라서 주님 말씀대로 온전한 마음으로 살지 못했다고 심하게 자책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고, 자칫하면 여러 가지 정서적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철학자가 자기는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읽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성경 말씀이 점점 더 깊이 있고 심오하게 느껴지더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극히 당연합니다. 성경 말씀은 하느님 경륜에서 나온 말씀인데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다 외었다, 성경을 다 안다고 호언장담하는 분들은 면밀한 자기성찰을 해야 할 것입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daum.net/withdob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