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헤어져 한양으로
▶ 강완숙이 시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한양으로 상경하고 있다. 그림=탁희성 화백 강완숙(골룸바, 1761~1801)은 1761년 충청도 내포 지방에서 양반의 서녀(庶女)로 태어났다. 장성한 뒤 덕산 지방에 살고 있던 홍지영의 후처로 들어간 강완숙은 얼마 후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고는 책을 얻어 읽는 가운데 그 신앙의 위대함을 깨닫게 됐다.
이후 강완숙은 신앙에 대한 열정과 극기를 바탕으로 교리를 실천해 나갔으며, 1791년 신해박해 때는 위험을 무릅쓰고 옥에 갇힌 신자들을 보살펴 주다가 자신이 옥에 갇히기도 했다. 또 시어머니와 전처 아들 필주(필립보)에게 교리를 가르쳐 입교시켰다. 그러나 남편만은 입교시킬 수가 없었고, 오히려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어느 날 강완숙은 한양 신자들이 교리에 밝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시어머니와 아들과 의논한 뒤 함께 상경해 신자들과 왕래하며 살았다. 1794년 말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자 골룸바는 주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고 그를 도와 활동했다. 주 신부는 강완숙을 여회장으로 임명, 신자들을 돌보게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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