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이식
1969년 3월 25일 오후 6시, 서울 중구의 명동성모병원 수술실에서는 대한민국 의학사에 한 획을 긋는 수술이 시작됐다.국내 최초의 신장 이식이었다.- ▲ 국내 최초의 신장 이식
수술대에 누운 환자는 재미교포 정재화(33)씨. 그는 미국으로 이민 가 지내던 중 1년 전부터 만성 신부전증을 앓았다. 이후 증세가 점점 악화돼 사경에 이를 지경이 됐다. 미국 병원에서 신장 이식밖에 치료법이 없다는 말을 들었으나, 막대한 수술비와 신장 기증자를 구할 수 없어 귀국을 했다. 그러자 국내에 있던 정씨의 형 태화씨가 동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신장을 내놓겠다며 명동성모병원을 찾아 이식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 마침 의료진은 미국에서 첨단 인공 투석기를 들여와 가동 중이었고, 집도의가 됐던 외과 이용각(李容珏) 교수는 미국 휴스턴의 베일러의대에서 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신장 이식 수술법을 익히고 돌아온 터였다.
그러나 신장 이식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때였다. 이에 정씨 어머니는 "두 아들을 한번에 다 잃을 수는 없다"며 "차라리 내 것"을 떼라고 했다. 결국 최종 신장 기증자는 어머니로 바뀌었다. 수술은 외과·내과·비뇨기과·간호팀 등 40여명의 대규모 의료진이 참여해 3시간 28분 만에 끝났다. 모정(母情)과 의료진의 용기가 국내 최초 신장 이식을 탄생시킨 것이다. 미국은 1954년, 일본은 1959년에 신장 이식에 성공했다. 환자 정씨는 수술 후 어머니의 신장으로 5년을 더 생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장기이식은 면역 거부 반응을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한동안 날개를 접었다. 요즘처럼 우수한 면역 억제제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초반 '사이클로스포린(cyclosporine)'이라는 강력한 면역 억제제가 등장하면서 신장 이식은 날개를 바꿔 달았다. 혈연간이 아니더라도 조직형과 혈액형만 맞으면 신장이식이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장기 매매도 극성을 부렸다.
국내 최초 간이식은 1988년 서울대병원 외과 김수태 교수팀이 뇌사자로부터 간을 기증 받아 처음 이뤄졌다. 1992년에는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팀이 심장 이식, 외과 한덕종 교수팀이 췌장 이식을 하는 데 성공했다. 연세대의대 의료진은 1996년 폐 이식을 해냈다. 이제는 전국 60여 곳 의료기관에서 각종 장기이식을 시행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대한민국 의료계의 장기이식 수술은 작년 12월 31일 서울아산병원 외과 이승규 교수팀이 연간 345번째 간이식 수술을 성공시켜 세계 기록을 경신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