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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Ballade Pour Adeline) / 리차드 클레이더만

namsarang 2010. 4. 25. 15:31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Ballade Pour Adeline) / 리차드 클레이더만(Richard Clayderman)

Ballade Pour Adeline / 리차드 클레이더만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Ballade Pour Adeline)”는 1976년 폴 드 세느비유(Paul de Senneville)가 작곡하고 리차드 클레이더만(Richard Clayderman) 이 연주한 연주곡입니다.
프로듀서로서 성공한 작곡가 “폴 드 세느비유”는 새로 태어난 자신의 딸 “아드린느(Adeline)”를 위해 이 작품을 작곡하여 당시 피아니스트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23살의 크레이더만에게 특별히 연주를 의뢰 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팝 피아니스트 리차드 클레이더만(Richard Clayderman)은 1977년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Ballade Pour Adeline)로 데뷔를 했는데 프랑스 차트 정상에 대번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연주곡은 한 때 피아노를 쳤던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이 한번쯤은 쳐 보았을 70년대 대표적인 피아노 연주곡입니다.
리차드 클레이더만은 프랑스 국립원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피아니스트로 로맨틱하면서도 낭만적인 피아노 연주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팝 피아니스트로 큰 인기를 끌면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연주가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곡으로도 뽑힌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는 우리들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너무도 아름다운 연주곡입니다.
전설에 얽힌 이야기로는 한 남자가 자신이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여인 아드린느를 위하여 만든 곡이라고 하는데 아름다운 선율만큼 가슴을 시리게 하는 아름다운 사랑이 담긴 곡이기도 합니다.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에 얽힌 이야기] 서로 너무도 사랑했던 연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남자는 갑자기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고 불행하게도 그는 전쟁터에서 그만 한 쪽 팔과 다리 한쪽을 잃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불구의 모습으로 그토록 사랑하는 그녀 곁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는 그녀를 멀리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것만이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에게 베풀 수 있는 진실 된 사랑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녀는 전장에 나간 사랑하는 사람의 소식이 없어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고 멀리 떠나 있던 남자는 그녀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망설이던 그는 결혼식이 열리는 교회로 향합니다.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아니 지금까지도 가슴 아프게 사랑하는 아드린느의 행복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꼭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혼식장에 도착한 그는 너무나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곁에는 두 팔도, 두 다리마저도 없는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던 가를.....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가를.....
그녀는 남자의 건강하고 완전한 육체만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돌아와 그녀를 위해 눈물을 쏟으며 오선지위에 슬픔을 그렸습니다.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지요. 진실로 사랑했던 한 여인을 위해 한 남자가 바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절하고 애틋한 선율의 표현이었습니다.
위 이야기가 실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이 곡과 어울리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립니다.

리차드 클레이더만(Richard Clayderman)


      리차드 클레이더만은 1953년 12월 파리에서 피아노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필리페 페이지(Phillipe Pages)라는 본명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클레이더만은 아버지가 다른 학생을 가르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며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로서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여섯살 무렵 할아버지로 부터 낡은 피아노를 선물 받았는데 그때부터 그는 모국어인 프랑스어 보다 피아노를 통해 말하는 것에 훨씬 능통하였다.
      16세에 처음으로 피아노 콩쿨에서 입상하면서 그는 클래식 피아노만으로는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의 한계를 느끼고 친구들과 함께 락그룹을 조직하여 청소년 시절의 왕성한 혈기를 발산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병환으로 더 이상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밤이면 프랑스 음악을 리드하는 뮤지션들과 연주하는 생활을 한다.
      몇 년후 그는 음악을 함께 했던 “La Maladie D'amour” (사랑이라는 병)의 주인공 Michel Sardou (미셀 사르두)와 프랑스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프랑스 국민가수로 대변되고 있는 Jonny Hallyday (조니 할리데이 40주년 기념 에펠탑 공연에 무려40만 명이 몰렸음) 등의 프랑스 대중 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무대를 장식하는 피아노 세션을 시작 하면서 클레이더만의 성공은 시작되고 있었다.
      때마침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폴 드 세느비유는 그의 딸 "아드린느"에게 바치는 곡 'Ballade Pour Adeline'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을 연주해 줄 피아니스트를 찾고 있었다.
      1976년 델피느 음반사를 이끌던 올리비에 뚜쌩의 오디션에 리차드 크레이더만은 당당히 23살의 나이로 합격하면서 전폭적인 인정을 받아 기용하게 된다. 당연히 이곡은 리차드 클레이더만이 연주 레코딩하게 되였고 파장은 유럽을 비롯하여 남미, 일본, 호주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2천 2백만 장의 앨범 판매기록의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1978년 이후로 클레이더만은 국제적인 팝 피아니스트로서 걸맞는 명성과 캐리어로 전 세계 각국을 돌며 감미롭고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갈증을 채워주고 있다.
      오늘날까지 클레이더만은 63개의 음반 플래티넘을 따냈으며 253개의 세계적인 골드레코드를 기록하며 “피아노의 시인”으로 칭송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3번의 내한공연을 가졌는데 매번 매진사태를 일으키어 특별히 많은 열광을 받았다.





출처 : 세계 풍물 여행기
글쓴이 : 상운 원글보기
메모 : 좋은 곡 올려주신 상운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