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땅

(13) 사람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namsarang 2010. 7. 21. 17:05

[사제의 해-성경의 땅을 가다]

 

(13) 사람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전날 저녁부터 파도가 높아 우리가 타고 있는 크리스탈호도 항해가 쉽지 않았다. 파도를 거슬러 가느라 배가 흔들리다 보니 당연히 목적지를 향하는 속도도 느려질 것이다.

 갑판에 서니 어둠에 둘러싸여 있는 바다와 거친 파도소리에 무서움마저 들었다. 곁에 있던 한 형제님이 나에게 다가와 이야기했다. "그 옛날 바오로 사도도 이런 풍랑 속을 뚫고 조그만 나무배로 전도여행을 하셨겠죠? 파도에 배가 파선돼 죽음의 고비를 넘기셨다고 했는데 정말 상상만 해도 가슴이 울컥하네요."

 나도 그 옛날 작은 나무배로 이 넓은 바다를 헤치며 죽음의 고비를 넘기셨던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런데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당한 고난을 이야기하던 중 파도에 배가 부서진 일을 편지에 적은 것이 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2코린 11,23-27).

 바오로 사도의 여정에 비춰보면 이런 파도쯤이야 무슨 고난이 되겠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하고 그것을 피하려고만 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일정대로라면 지금쯤 성 요한 기사단의 도시 로도스에 도착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거친 풍랑으로 시간이 지체됐다. 선장은 안내방송을 통해 사정상 로도스에 정박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한다. 아쉽게도 저 멀리 로도스 섬을 두고 지날 수밖에 없었다.

 로도스는 지중해 동쪽, 터키 바로 아래에 붙어 있는 그리스의 아름다운 섬이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청동 거상'으로 기원전부터 유명했던 이 섬은 오스만 튀르크 군에 맞서 싸웠던 요한 기사단으로도 유명하다. 오늘날 세계적인 지중해 휴양지로 손꼽히는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순례단은 아쉬움을 접고 대신 배 안에서 시간을 갖기로 했다. 특별강의를 듣고 성경 골든벨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강의를 통해 바오로 사도가 체험한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이 바로 성공적 선교의 근본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사제단의 맏형인 민병덕(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신부님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사울이 바오로 사도로 변화한 과정을 통해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민 신부님은 사목 현장에서 경험한 여러 가지 예화도 소개하셨다. 신부님의 열정적 강의 덕분에 사람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 항해 중 선상에서 성경강의를 하는 것은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강사에게도 특별한 체험이 되는 것 같다. 성지순례라는 특별한 체험이 살아계신 하느님 말씀을 더 잘 알아듣게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