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순교자 열전

탁희성 화백의 유작

namsarang 2010. 9. 19. 23:06

 한국 순교자대축일 특집 :

 

탁희성 화백의 유작


   이번에 소개하는 탁 화백 작품은 고인의 아들 탁동호(시몬, 69)씨가 소장하고 있는 미공개 작품 40점 가운데 일부다. 배접(褙接, 표구나 전시를 위해 그림 뒷면에 종이나 헝겊 등을 붙이는 것)을 하지 않은 원판 그대로인 작품들이다(평화신문 1009호 2009년 3월 8일자 보도).

 더욱이 이 40점 작품은 모두 고인이 임종하던 해인 1992년에 그린 것들로,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사력을 다해 순교자들의 삶을 그림으로 남기려고 노력한 탁 화백의 뜨거운 열정과 깊은 순교 신심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신유박해 순교자 이득인부터 기해박해 순교자 한 안나와 김 바르바라에 이르기까지 여성 신자들만을 소재로 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 가운데 서너 점을 제외한 대부분이 1801년 신유박해와 관련된 이들이다.

 그림의 소재가 되는 여성 신자들은 순교자뿐 아니라 유배자들, 형을 받고 풀려난 이들로 다양하다. 흥미로운 것은 해당 여성 신자의 특정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그림들을 전체로 놓고 보면 당시 천주교 여성 신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여성 신자들 가운데는 동정녀와 과부들이 상당수 있었다. 이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집을 산 후 공동생활을 하며 신앙을 지켜나갔다(제10도). 동정녀 김경애의 어머니 이어린아기를 비롯해 과부 김희인과 이환임 등이 이런 공동생활의 중심을 이뤘다. 이들은 공동생활에 필요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성물이나 성화 등을 만들어 팔거나 나눠주며 살았다(제7도). 그러나 이렇게 여자들만 함께 사는 것이 미풍양속을 어지럽히는 행위로 지목받기도 했다. 동정녀 김경애에게 씌운 죄목이 그러했다. 동정녀이면서 과부행세를 했던 김경애는 이런 공동생활을 하다가 붙잡혀 경남 사천으로 유배됐다(제4도).

 궁인들과 노비들도 상전을 따라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는데, 교리를 배우며 매를 맞기도 했다. 강완숙의 비녀 소명도 그렇게 매를 맞으며 교리를 배우고 신앙을 실천했다. 소명은 하동으로 유배됐다(제30도).

 사제 뒷바라지를 하는 일은 주로 여성신자들의 몫이었다. 순교자 지황(사바)의 처 김염이(안나)는 주문모 신부 입국 준비 때 주 신부가 입을 겨울옷을 만드는 일을 맡았다. 김염이는 신유박해 때 붙잡혀 경남 진해로 유배당했다(제18도). 선혜청(宣惠廳) 창고 직원 김춘경의 처 류덕이(데레사)는 주문모 신부에게 음식상을 차려주는 등 주 신부를 돕다가 체포돼 전남 화순으로 귀양갔다(제17도).

 여성 신자들 가운데는 참판 이중복의 딸 신소사(召史, 과부를 점잖게 부르는 말)도 있었다. 그는 한소사에게 천주교 서적을 빌려보면서 천주교에 입교했으나 집안 반대가 극심하자 조만과(早晩課) 책자를 불태웠다. 그러나 그 후 다시 천주교 신앙에 귀의했고 결국에는 신지도로 귀양갔다(제27도).

 탁 화백은 바르바라라는 동정녀에 관한 기막힌 사연도 담았다. 바르바라는 어려서부터 동정을 결심했으나 11살 때부터 혼사가 들어오자 이를 피해 산으로 들어가 수계 생활을 하면서 신앙을 지켰다. 14살 때 최양업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고 동정을 지키도록 해달라고 청했으나 최 신부는 거절하면서 타일렀다고 한다. 그러나 바르바라는 거듭 동정을 고집하다가 마침내는 주교에게 파문 당하기까지 하면서 결국 병을 앓게 됐고, 교우들의 부축을 받아 공소에 나가 고상 앞에서 성모송을 외우며 선종했다고 한다. 1850년 9월 23일이었고 바르바라의 나이 18살이었다고 탁 화백은 전했다(제37도).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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