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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는 경제, 노예 만드는 정권

namsarang 2010. 9. 25. 23:33

[오늘과 내일/방형남]

 

빌어먹는 경제, 노예 만드는 정권

 

북한의 박길연 외무성 부상은 나흘 전 유엔본부에서 “북한은 사회적인 발전을 이미 달성했다”고 주장해 외국 대표단의 빈축을 샀다. 박 부상은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정상회의에서 뻔뻔하게도 북한이 무상치료, 의무교육, 양성평등 등 빈곤퇴치를 위한 주요 목표를 이미 달성했다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국제사회 비웃음사는 거짓말


유엔은 2000년 새 천년을 맞아 절대빈곤 퇴치, 유아사망률 감소, 지속가능한 환경 확보 등 8가지를 새천년개발목표로 선정해 2015년까지 달성하기로 했다. 이번 정상회의는 지난 10년간의 개발목표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이행 방안을 논의하는 모임이다. 유엔의 개발원조 방향도 이번에 결정된다. 북한이 진실을 털어놓고 도움을 호소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인데도 엉뚱하게 세계를 상대로 거짓말만 늘어놓은 것이다.

 

비슷한 일이 7월 베이징에서도 벌어졌다. 빈곤퇴치를 주제로 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북한 대표가 “우리는 주민들이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상낙원을 이룩했다”는 발언을 길게 이어가자 외국 참가자들은 대부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이 우연히 화장실에서 만난 북한 대표에게 “북한에서 식량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지상낙원 선전을 하느냐”고 물었다. 얼굴이 벌게진 북한 대표는 “내가 어떻게 다른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얼버무리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박길연의 연설 이틀 뒤인 23일 유엔 연단에 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인권을 억압하는 전제주의 국가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면서 북한을 ‘주민을 노예로 만드는 정권’으로 규정했다. 미국 대통령과 북한 외무성 부상 가운데 누가 진실을 말했는지는 세계가 다 안다.

거짓말은 북한 내부에서도 계속된다. 18일자 북한 노동신문에는 “남에게 빌어먹는 절름발이 경제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처럼 큰 죄악은 없다”며 경제의 주체화와 자립을 강조하는 기명 논설이 실렸다. 지상낙원이라면서 ‘빌어먹는 경제’를 거론하는 이율배반도 딱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과 남한에 손을 벌리는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폐쇄국가인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 당장 28일 열리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 사이에 전망이 엇갈린다. 북한의 행태를 분석하는 각론이 맞지 않을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총론은 확실해 보인다. 북한은 지금 위험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으로 3대 세습체제 구축이 발등의 불이 됐다.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2012년은 곧 닥친다. 1년여가 지나면 더는 빈손으로 주민들을 속일 수 없다.

이 천안함 잊고 싶어 안달인가

북한의 절박감은 남북 관계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의 최저임금은 월 60.775달러로 조용히 조정됐다. 한때 월 300달러를 요구할 정도로 강짜를 부리던 북한이 기존 남북 합의인 5% 인상률을 수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천안함 폭침() 이후 우리 정부가 단행한 5·24 대북제재 조치가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의 제재로 연간 2억5000만 달러의 현금 줄이 끊겼으니 북한은 속이 탈 것이다.

우리로서는 남북관계를 주도해 정상적인 관계로 이끌 수 있는 호기가 될 수도 있다. 국가를 파탄에 빠뜨려 놓고도 거짓말을 늘어놓는 북한을 보면 그들이 천안함 폭침 도발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판에 우리가 먼저 천안함 사건에 구애받지 말고 출구를 모색하자고 안달복달하는 남쪽 일부 인사들이 있다. 그 의도와 배경이 수상하다. 급한 쪽은 북한인데 누구를 위해 그러는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