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北, 변화하는 北
지난달 28일 열린 북한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와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최후의 김정일 체제’이자 ‘최초의 김정은 체제’가 탄생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하고 김정은 대장이 보좌하는 ‘2인3각’ 체제가 출발한 것이다. 이 기간이 오래 지속될수록 북한의 후계체제 형성은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다. 장성택과 김경희 부부가 이 과정에서 후견인 역할을 맡으리라는 것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김 위원장은 1980년 제6차 당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조직담당서기, 중앙군사위원에 임명돼 당내 제2위의 자리를 굳혔다. 1991년에는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했다. 그러나 이번에 김정은은 인민군 대장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동시에 취임했다. ‘당에서 군으로’라는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가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이제 와서 44년 만에 당 대표자회를 연 것일까. 군이 강력해져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고, 김정은 후계체제를 확실히 다지기 위해 노동당의 ‘최고 지도기관’으로의 정상화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민군을 통제하는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부활해 김정은이 부위원장에 취임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김정은과 나란히 부위원장에 취임한 이영호 총참모장은 군부의 실력자다. 이와 함께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김영철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장이 중앙군사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또 국방위원회 위원 대부분이 당 지도기관의 요직에 취임해 당과 군의 협조관계가 확보됐다. 다만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당내 요직을 얻지 못한 것은 예상 밖이다.
이번 인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김정일이 30세도 안 된 셋째아들 김정은을 차기 최고지도자로 지명했고 여러 보장조치를 통해 ‘3대 세습’을 강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자적인 핵 억제력 구축, 중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의존 그리고 확실한 후계체제 구축은 김정은 체제가 확립되기까지 과도기의 3대 방침이다.
김정은이 등장했다고 해서 북한의 기본정책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것은 두 형과 달리 그가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쏙 빼닮은 독재자의 자질을 갖춘 원리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책이 채택된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김정은의 정책이라기보다 김정일의 정책이다.
그렇다고 해도 ‘천안함’ 침몰사건 이래 북한의 강경정책이 앞으로 계속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북한대사의 유엔 연설에서 보듯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또 최태복 서기가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측에 대표자회의 결과를 보고하고 지지를 구한 것처럼 중국 의존도 여전하다. 그러나 북한의 강경정책은 정점에 이르면 반드시 유연정책으로 전환하는 게 김일성 시대 이래의 관행이었다.
따라서 10일 노동당 창건기념일 퍼레이드에서 군사력을 과시하고 25일 중국군 참전 6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른 후 북한의 대외정책이 유연한 대화노선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발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북한과의 교섭도 준비해야 한다.
북한 지도부에 앞으로 남은 최대 과제는 2012년 ‘강성대국의 문’ 앞에서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 김 위원장의 희수를 성대하게 축하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낙오한 경제를 부흥궤도에 올려놓고 조금이라도 ‘인민생활의 향상’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가능하다면 이에 필적하는 외교적 성과, 즉 대외 관계의 대폭 개선이 필요하다. 그 어떤 경우라도 한국의 협력을 빼놓을 수 없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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