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
고래싸움에서 새우 살아남기
“오직 외세에 항거한 나라만이 올바른 시각으로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
영화 ‘아편전쟁’ 초입에 나오는 말이다. 이 영화엔 중국 사상 최대인 1500만 달러가 투입됐다고 한다. “어두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펼쳐 중국 민족 100여 년간의 굴욕을 씻어내겠다”는 셰진 감독의 말이 그 배경을 설명해준다.
영화엔 청나라 황제의 명으로 엄청난 양의 아편을 몰수해 불태운 임칙서(林則徐)가 등장한다. 강경론자인 그는 황제에게 아편근절 상소를 올리고 이를 실천하지만 결국 청나라는 영국과의 전쟁에 휘말린다. 전쟁에 패한 청나라는 홍콩을 뺏기고 더 많은 항구를 개방하는 굴욕을 당한다. 임칙서의 항거가 당시로선 실패로 끝난 셈이다.
이런 임칙서가 요즘 중국에서 ‘외세 침략에 맞선 중화민족의 위대한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외교적, 군사적으로도 목소리를 높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외적 팽창과 함께 내적으로 애국주의가 용솟음치는 중국을 바라보며 세계인들은 감탄과 착잡함이 교차한다.
최근 중국과 미국의 ‘환율전쟁’을 단순히 경제전쟁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지구촌에 아픈 역사가 많기 때문이다. 아편전쟁도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됐다. 무역 결제 수단인 은(銀)을 원했고 1800년대 수차례 공황을 겪으며 더 넓은 시장이 필요했던 영국은 비난을 무릅쓰고 전쟁을 일으켰다.
제2차 세계대전 역시 1929년 대공황 이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발단이 됐다. 영국 프랑스 등이 식민지를 경제블록화해 무역을 독점하자 후발 주자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전쟁을 통한 식민지 확보로 경제난을 타개하려 한 것이다.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난이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래 세계 각국은 비교적 협조를 잘해왔다. 대공황을 경험한 선진국들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공멸(共滅)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한데 2년도 못 되어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둘러싸고 미중이 갈등을 빚더니 다른 나라에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세계적으로 수출과 수입은 균형을 이룰 수밖에 없는데 일단 실업난과 불황을 벗어나기 위해 서로 수출만 늘리려다 보니 환율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중의 환율전쟁은 서로의 수출품에 반덤핑 관세를 매기는 등 전형적인 무역전쟁, 보호무역주의의 모습을 띠고 있다. 갈등의 원인은 분명하다. 한쪽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내고 다른 쪽은 적자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석이 달라서 갈등이 생긴다. 미국은 중국이 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낮춰 무역흑자를 낸다고 보고, 중국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환율 때문이 아니라 국내 경제구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진실은 그 사이 어디쯤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까 두려운 한국이다. 세계 경제위기 이후 간신히 좋은 성적을 이어왔는데 강대국 간 ‘쩐의 전쟁’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하고 환율이 급변동하니 안정적인 경제운용을 할 수가 없다.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면 ‘펀더멘털’이 괜찮아도 부도날 수 있다는 경험을 1997년 외환위기 때 했다. 우리 정부가 외환시장 규제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170년간의 치욕을 완전히 딛고 굴기한 중국이 조금 양보하고, 다른 나라들도 자국 이기주의를 넘어 공존을 위해 협조하길 기대할 뿐이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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