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전례력 마지막 날인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우리는 그리스도 십자가 여정에서 그것을 허락하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묵상의 답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답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교회가 소멸돼가는 것 같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교회가 썩지 않을 생명의 씨를 키우고 있다'는 신학자 본 회퍼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는 하느님의 고민을 짊어졌다는 뜻이며,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짊어졌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분이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면서 묵상을 한 이런 글이 떠오릅니다. "배추가 김치가 되려면 우선 소금간이 배추 속으로 들어가 뻣뻣한 배추의 원래 모습이 사라져야 합니다. 배추의 숨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배추 속으로 들어가는 양념도 입장은 매한가지입니다. 배추 속으로 들어가야 배추가 비로소 김치 맛을 냅니다. 그 다음에 김칫독은 양념을 품고 있는 배추를 끝까지 보듬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만약 참지 못하고 김칫독을 열면 김치가 아주 이상한 맛이 됩니다."
만일 소금이 주님 십자가 여정이라면 소금인 주님의 십자가 삶이 우리 몸에 배어 있어야만 뻣뻣한 육신의 숨결이 비로소 죽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뻣뻣한 우리 이기적인 모습이 죽어야만 인간 본래의 맛이 향기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칫독이 배추를 품듯이 주님이 우리를 품을 수 있도록 주님께 자신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 자신의 이기적 욕망이 죽지 않으면 늘 김칫독을 열어 확인하고 싶은 의심과 불안과 유혹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십자가 여정에 대한 의심과 불안, 유혹에서 주님은 하느님 아버지를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철저히 죽이는 삶을 선택하십니다. 이 모습에서 우리는 공생활이 시작되기 전에 주님이 광야에서 받으셨던 세 가지 유혹이 십자가에서 더 구체적인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루카 4,9). 악마가 주님을 시험했듯이 이제 사람들은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루카 23,37)하고 빈정거리며 주님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오히려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사랑의 종 모습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주님의 다스리는 방식은 세상과는 다릅니다. 주님의 다스림은 하느님 아버지의 은총과 자비를 계시하는 삶이며, 죽는 순간까지 사랑으로 증거하는 삶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곁에 있던 죄수는 우리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을 모독하는 죄인처럼,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매달리신 십자가의 원수처럼 살아가곤 합니다(필립 3,18).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 23,39)하고 부르짖는 그 내면에는 자신의 실제 모습은 숨기고 세상 영광만을 찾으려는 이기적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 다른' 모습도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에서는 다른 죄수를 죄인이라 부르지 않고 '다른 하나'(루카 23,40)라고 부른 것이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하고 간청할 줄 하는 새로운 인간적 내면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제껏 살아온 삶과는 아주 다른 방식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움을 분노로 갚지 않고 화해하고 형제처럼 사는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자신은 사람값에도 못 미치고 바닥 인생이라고 좌절했던 한 사람이 그런 자신을 거둬주시는 주님 사랑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지만 자신의 내면에는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자신의 마음을 주님 마음에로 향하게 하지 않는다면, 불행한 인간일 수 있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완전한 성취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지를 갖고 기도하는 삶, 그리고 그것에서 나오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의탁할 때 주님이 우리를 기쁨으로 인도하실 것을 우리는 신앙하고 희망하는 것입니다. 주님 고통과 사랑이 교차되는 십자가에서 나오는 그 마음에 일치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가장 심오한 의미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생활속의 복음'을 집필해주신 홍승모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교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대림 제1주일(11월 28일자)부터는 원주교구 횡성본당 주임 박용식 신부님께서 집필해주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