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판사는 영원한 판사?
우리나라 판사들은 한번 임용되면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평생 판사’나 마찬가지다. 대법원장이나 소속 법원장이 재판능력과 자질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도 쉽게 사퇴시키지 못한다. 뇌물 비리를 저질러도 의원면직 형식으로 법복만 벗기는 게 상례다. 그러니 변호사 개업을 해서 전관예우를 받으며 큰돈을 버는 ‘인생역전’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뜻과 헌법 정신에 어긋남은 말할 것도 없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제외한 일반 판사의 임기는 헌법상 10년이다. 따라서 판사는 10년에 한 번씩 반드시 재임용(연임)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정년 63세까지 자동적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刑)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으며…’라는 헌법의 신분보장 장치가 판사직을 평생직업으로 선언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재임용 절차를 정한 별도의 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헌법 제105조의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는 조항에 어긋나는 것이다. 10년마다 한 번씩 부적격 판사를 걸러내라는 헌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는 정치적 배경에 의한 재임용 탈락이 상당수 있었다. 그 반작용인지 민주화 이후에는 판사가 재임용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부적격 판사 10년마다 꼭 걸러내야
이런 현상은 결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법정에서 보면 부적격 판사들이 엄연히 있는데도 재임용 탈락이 없다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뜻과 헌법 정신에 배치된다. 최근 경력 10년 안팎의 일부 단독판사를 중심으로 반(反)사회적 돌출 판결이 잇따르는 것은 유명무실한 재임용 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과 가치를 훼손하는 정치적 이념적 편향 판결, 정의와 불의를 뒤바꾸는 불공정 판결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과 불신감이 높아지고 있다.
전관예우의 악습과 막말재판 같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재판진행 사례도 끊임없이 도마에 오른다.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루어 조진다’는 말이 있듯이 늑장재판으로 당사자들에게 시간과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는 폐해도 남아 있다. 뒤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닐 수 있다.
일부 판사들의 일탈을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내년 2월 재임용 대상이 되는 판사 180명에 대한 평가 작업에 나섰다. 2년 전부터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몇몇 지역 변호사단체가 판사 평가를 시작했지만 재임용 대상 판사에 대한 평가는 처음이다. 2001년 2월 신규 임용된 139명과 1991년 2월 신규 임용돼 2001년 한 차례 재임용을 거친 41명을 대상으로 한다. 10년 경력 판사들은 대개 단독판사나 고등법원 배석판사로 있고, 20년 경력 판사들은 고법 또는 지법 부장판사, 지원장 등으로 재직 중이다.
변협은 엄정 평가, 법원은 적극 반영을
변협 설문지는 공정성 청렴성 성실성 전문성 적정성 도덕성을 종합 평가해 재임용의 가부(可否)를 묻고 있다. 다음 달 그 결과가 나오면 대법원에 전달해 내년 2월 재임용 심사 때 반영토록 할 예정이다. 대법원은 내부규칙에 따라 판사들에 대한 근무평정을 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기준은 뭔지, 평상시 인사와 재임용 때 어떻게 반영되는지 알려진 게 없다. 대법원장과 법원장들이 독단적으로 운영해도 사실상 견제 방법이 없다.
변호사들만큼 판사들의 재판능력이나 재판태도를 잘 알고 있는 집단은 없다. 변호사들이 판사 재임용 과정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개인감정의 표출이 아닌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가 담보돼야 의미가 있다. 김평우 대한변협 회장은 “조속히 법관재임용절차법을 만들고 미국처럼 변호사들에 의한 판사 평가를 제도화해야 국민주권 이념에 맞다”고 말했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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