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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적 창의력

namsarang 2010. 11. 21. 15:20

[기고/이미경]

 

과학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적 창의력

 

 

중학교 1학년 과학시간, 아이들이 열심히 세포에 대해 공부한다. 핵, 액포, 세포막 등의 명칭과 기능을 배우고 현미경을 통해 관찰한다. 우리의 과학시간은 여기서 끝난다. 아이들에게 남은 일은 배운 것을 익히고 외우는 일이다.

이런 경우를 한번 상상해보자. 과학시간에 이어 음악선생님이 들어온다. 그러고는 학생에게 세포의 노래를 만들어보라고 주문한다. 아이들은 과학시간에 보았던 세포의 움직임을 다시 생각한다. 세포막의 내용물은 액체 같아 보이는데 무슨 소리를 낼까? 세포막은 물질의 출입을 조절한다는데 소리가 규칙적일까? 과학시간에는 한 번도 하지 않았을 새로운 상상과 발견이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펼쳐질 것이다.

예술은 상상에 대한 억제가 다소 느슨하다. 아이들은 예술작업 속에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점을, 두렵고 애매모호한 점을 마음껏 상상한다. 그래서 예술교육학자인 엘리엇 아이스너는 “예술은 실험을 위한 리허설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환상과 상상’이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며 새로운 의미로 해석하게 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예술교육은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는 교육으로, 그래서 두뇌보다는 가슴에 작용하는 교육으로 생각한다. 예술교육을 강조하는 사람조차 예술교육을 지덕체의 균형을 갖추기 위한 하나의 수단 정도로만 여긴다. 분명 예술교육은 아이의 메마른 정서를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21세기에 예술교육이 재조명되는 이유는 정서적 영향력 때문만은 아니다.

하워드 가드너는 미래인재가 갖추어야 할 능력을 플렉스퍼티즈(flexpertise)라 했다. 융통성(flexibility)과 전문성(expertise)의 합성어이다. 이는 배운 지식을 여러 다른 상황에서 융통성 있게 창조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학교 과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완수할 수 있는 전형적인 전문 능력(routine expertise)과 구별되는 개념이다.

예술교육은 바로 이 창조적 응용력을 계발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애매모호함을 참는 성향, 불확실한 것을 탐색하는 성향의 발전을 이끈다. 루트 번스타인은 예술적 훈련이 잘된 과학자, 과학적 훈련이 잘된 예술가가 창의적 업적을 이룰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한다. 그는 창의적 업적을 이룬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이 일반 과학자에 비해 예술에 훨씬 더 몰두해 왔음을 밝혀냈다. 그에 따르면 수상자들은 최소한 2배로 많은 사진작가, 4배의 음악가, 17배의 화가, 15배의 수공예가, 25배의 아마추어작가(시나 소설), 22배의 공연예술가(배우, 무용가, 마술사)로 활동했다.

 

예술교육의 중요성이 우리 현실에서는 아직 충분히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 학교에서는 1주일 35시간 이상의 수업시간 중 겨우 한두 시간만을 예술수업에 할애한다. 수학과 음악, 미술과 생물에서 뛰어난 소위 ‘다중영재’가 있는데 대학입시라는 현실 앞에서 그들의 예술적 재능은 포기된다. 다중영재야말로 미래의 융합형 창조사회에서 큰 힘을 발휘할 텐데도 말이다.

아이맥과 아이팟을 만들어 오늘날의 애플사를 있게 한 수석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손으로 만드는 일에 열중했고 미술과 디자인, 컴퓨터를 공부한 후 예술적 감각과 상상력을 활용하여 새로운 산업적 아이디어를 창출했다. 수학 문제만 열심히 푸는 교육으로는 이런 인재를 키워낼 수 없다. 예술교육이 핵심 교과로 우리의 교육과정에 들어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경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