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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이젠 비전을 현실로

namsarang 2010. 12. 7. 22:55
[시론/최병일]

 

                                  한미 FTA, 이젠 비전을 현실로

 

 

 3년 반의 긴 세월 동안 서랍 속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빛을 보게 됐다. 기존 한미 FTA의 자동차 분야 협정보다 관세철폐 시기를 뒤로 미루고, 자동차 분야에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도입하는 등 미국의 요구를 많이 수용했고, 반대급부로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 시행 기간 유예, 미국 내 한국지사 파견근로자의 비자유효기간 연장, 돼지고기 관세철폐 기한 연장을 얻어냈다. 주고받기식 협상을 하긴 했지만 한국이 많이 양보를 한 모습이다. 야당은 협상결과가 공표되기도 전에 ‘굴욕협상’으로 규정했고, 협상결과가 발표되자 ‘비준 결사반대’를 외친다.

3년 반 동안 기나긴 줄다리기

협상은 상대가 있는 법. 아무리 훌륭한 협정도 발효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1997년 타결된 기후변화에 대한 교토의정서를 보라. 미국은 협정문에 서명했지만, 미국의회 비준을 받아내지 못해 기후변화협약은 무의미한 국제조약이 되어 버렸다. 국제협상의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나는 막무가내 행동이지만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이다. 바람직한 방안은 2007년 6월 서명된 한미 FTA 그대로 발효하는 것이지만 정치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의지도 부족했고 전략도 없었다.

2007년 6월 한미 FTA가 서명될 때, 미국의 비준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견되었다. 의회를 장악했던 민주당은 한미 간 자동차무역의 불공정이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한미 FTA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천명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한미 FTA를 추진했던 공화당이 정권을 내어주고 보호주의 색채가 농후한 민주당이 집권했다. 게다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되고, 미국의 자존심이었던 GM이 파산하는 등 미국 자동차산업이 괴멸하는 상황에서, 보호주의 분위기가 미국을 뒤덮고 FTA는 잊혀졌다.

한국 측은 “협정문의 한 글자도 못 고친다”는 강경발언으로 배수의 진을 쳤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수용할 만큼 미국은 순진하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한국은 미국의 막무가내식 공세를 막아내느라 힘든 협상을 해야 했다. 이 대목에서 한국 정치권의 책임도 다분히 크다.

2008년 한미 FTA의 국회 비준동의 과정에서 야당은 당리당략에 치우친 물리적 저지에 급급했다. 난리북새통을 초래하면서까지 비준동의안을 상정했던 여당은 외통위만 통과시키고 본회의에는 상정하지도 않았다.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동의 했더라면, “협정문의 한 글자도 못 고친다”는 말은 신빙성 있게 미국에 전달되고 미국은 기존 협정문 바깥에서의 창조적인 해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다급해진 건 되레 정부-재계

2007년 협정 그대로를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은 크지만 막히면 때로는 길을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 명분에 집착하여 한미 FTA를 무용지물로 만들기보다는 어느 정도 양보를 하더라도 발효시키는 일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이번 합의를 가능케 했다. 외견상으로는 이번 합의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 자동차업계인 것 같지만, 이들은 관세혜택이 지연되었을 뿐 불확실성이 제거되어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일본 정부와 민간연구소는 한미 FTA 발효로 일본이 자동차, 기계, 전자 분야의 수출에서 한국과의 경쟁에 밀려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다급한 불은 껐지만 회복세는 더디고,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경쟁국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과 교역을 하게 된다는 것은, 한국 스스로의 결단으로 만들어낸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파당적, 이념적 반대에 익숙해진 정치권이 소모적인 찬반논쟁을 지양하고 한미 FTA가 국익 증진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논의하길 기대하는 일이 비현실적이지 않기를 소망한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