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이런일 저런일

한국사 필수 지정보다 중요한 것들

namsarang 2011. 2. 11. 22:14

[동아광장/강규형]

한국사 필수 지정보다 중요한 것들

 

강규형 객원논설위원·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역사교육, 특히 자기 나라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기억의 공유’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얻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한국사를 필수로 하자는 요즘 세간의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교육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한국사 필수 논의 이전에 국사교육의 여러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방향을 찾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일제강점 35년에 대한 치욕을 극복하고자 민족주의를 북돋는 국사교육이 광복 후 강조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노력은 결실을 이뤄 자긍심을 갖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나타났다. 한국의 국사 교육은 역사 인식의 주체를 국민 혹은 국가가 아니라 민족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민중적 관점을 강조했다. 그 결과는 한편으론 편협하고 폐쇄적인 복고적(復古的) 민족주의, 다른 한편으론 마오쩌둥(毛澤東)주의에 영향을 받은 좌파적 민족주의로 귀결됐다. 근현대사 교과서에 마오쩌둥 사진이 여러 번 실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근대적 개념인 ‘민족’을 무리하게 고·중세사에 적용하는 오류도 범했다. 더구나 권위주의 정부 시기의 국사학에 대한 특혜에 가까운 전폭적 지원은 국사학계를 안이하고 자족적이고 구태의연한 시각과 서술에 머물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민중 통일지상 史觀탈피해야

국사 교과서의 또 다른 특징은 내재적(內在的) 발전론에 입각해서 근대를 열강의 침략과 그것에 대한 저항이라는 이원적(二元的)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있는 점이다. 반면 조선왕조체제의 내적 취약성과 자폐적(自閉的) 성격에 대한 언급은 없다. 왜 조선체제가 근대국민국가 형성에 처절하게 실패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고, 편리하게 외세에만 원인을 돌린다. 이런 역사서술에서 자기성찰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근·현대는 좋건 싫건 간에 국제관계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는데도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과 서술이 무시되고 있다. 즉 폐쇄적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일국사(一國史)적 관점에 빠져버려 한국사를 세계사적 시야에서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반외세적·감상적 민족주의 색채만 짙어졌다. 이런 사고 틀의 효용성은 이미 예전에 끝났다. 현대사 서술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부정적 서술, 대한민국의 성취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북한체제에 대한 우호적 서술도 강하게 나타났다.

일국사 중심의 교과서술의 배경에는 독특하게 세분되고 폐쇄적인 역사학의 존재 양태도 있다. 한국은 역사학과가 한국사·동양사·서양사로 나누어진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심지어 국사학과만 있는 대학들도 있다. 그 결과 같은 역사학 내부에서도 교류가 단절되는 경향이 있다. 현대 학문은 학문 간 통섭(通涉)을 중시하는 데 비해 한국의 사학계는 역사학 내부에서도 벽을 쌓고 있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국사학계 일부에서는 서양사나 동양사와의 교류도 없는 채 한국사라는 좁은 틀 안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만 봐도 그동안 일부 국사학계가 가졌던 폐쇄성과 후진성이 잘 드러났다. 새로 나온 ‘한국사’ 교과서들은 이전 교과서들보다 많이 개선됐지만 크게 봐서는 기존의 한계를 못 벗어나고 있다. 또한 일선 역사교육 현장의 편향성 문제도 심각하다. 제일 문제 많고 편향된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채택률을 보였던 것은 그런 서술이 교사들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전교조 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중등 교원이 자신들이 대학에 다니던 시절 배우고 체득했던 옛 인식체계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한국사를 이렇게 가르치느니 차라리 안 가르치는 게 낫겠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데 대해 반성과 개선이 있고 나서야 한국사 필수가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것이다. 한국사 교육은 민족, 민중, 통일지상주의라는 협소하고 폐쇄적인 사관(史觀)에서 탈피해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국제적 관점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역사서술을 위해서는 한국사학자 외에 서양사·동양사 관계자는 물론이고 정치사, 경제사, 인류학, 국문학 등 인접 분야 학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비교사적 연구와 학제 간 연구가 시도돼야 한다. 일례로 일제강점기의 사회문화사는 국문학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지 않은가.

건국 성과 충분한 서술 중요하다

또한 ‘자기비하’적인 역사관과 ‘자화자찬’식 서술이라는 양극단적인 접근에서 탈피해야 한다. 의도나 선전보다는 엄밀한 사료비판을 통해 입증된 사실을 중심으로 명암과 공과를 균형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특히 1948년 대한민국 체제가 어려움과 시행착오 속에서도 이룩한 성과를 충분히 서술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세대에게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지혜를 심어주는 성찰적 교과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gkahng@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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