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성인

(99) 성 클로드 드 라 콜롱비에르 (St. Claude de la Colombiere)-2.15

namsarang 2011. 2. 14. 21:33

[금주의 성인]

(99) 성 클로드 드 라 콜롱비에르 (St. Claude de la Colombiere)- 2월 15일


예수성심 환시 체험한 성녀의 고해사제, 설교가로도 명성


1641~1682, 프랑스 출생 및 사망. 예수회 사제. 수도원장. 선교사.

 성 클로드 드 라 콜롱비에르는 '예수성심의 사도'로 불리며 예수성심에 관한 환시를 체험한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1647~1690, 성모방문수녀회) 수녀의 고해사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인은 성녀가 수도생활을 하고 있던 파라이 르 모니알 지방의 예수회 수도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성녀는 당시 환시를 경험했다는 이유로 동료 수녀들에게 비난을 사고 구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녀의 이야기를 들은 성인은 깊은 묵상 중에 성녀의 환시가 하느님께서 주신 계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인은 이후 성녀의 환시가 공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성인 역시 예수성심 신심의 열렬한 수호자가 돼 이에 관한 책을 저술하는 등 예수성심을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교황 클레멘스 13세는 1765년 예수성심을 공경하는 축일을 공식적으로 선포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5년 '사제들에게 보내는 성 목요일 교황 서한'을 통해 예수성심대축일을 기리며 '사제 성화의 날'로 지낼 것을 권고했습니다.
 
 성인은 생전에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거나 '살아있는 성인'으로 추앙받은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존재는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가 1920년 시성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성녀의 고해사제로만 알려졌던 콜롱비에르 신부의 삶은 그가 남긴 기록들이 밝혀지면서 그가 완덕의 경지에 오른 성직자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성인은 프랑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17살 때 예수회에 입회했고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명강의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성인는 항상 자신이 하느님께 맞는 사람인지 고민하며 고통스러워했고 매일 참회와 속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런 고민을 기록해 놓은 자료들에선 그의 영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성인은 설교가로 명성을 얻어 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청교도혁명 이후 프로테스탄트 세력이 확장되던 때에 성인은 가톨릭 정통 교리와 예수성심을 전하며 교회를 떠난 이들의 마음을 되돌렸습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 모함으로 감옥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성인 건강은 크게 악화됐고 프랑스로 돌아온 뒤 곧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인은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