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진우]
‘국회의원은 봉급도둑’ 남의 일인가
정치인이 인기가 없는 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닌가 보다. 유럽에서도 정치인에 대한 시민의 신뢰도는 매우 낮다고 한다. 독일 7.8%, 영국 6.3%, 이탈리아 4.5%, 프랑스 3.2%에 불과하다. 가장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의사나 학자가 각각 70%, 50% 정도인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국인 중 자녀가 정치를 평생 직업으로 선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극소수다.
일본 최대 재계단체인 경단련(經團連)의 요네쿠라 히로마사(米倉弘昌) 회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밥을 먹으면서 국민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게 ‘당신들은 봉급 도둑’이라고 일갈했다. 민생은 제쳐 두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국회의원에 대한 통렬한 질책이다.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닌 듯싶다.
한 나라의 정치 발전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감히 말하건대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은 도농을 막론하고 이미 선진국 수준이다. 뜯어 보면 한량들의 면면도 다 괜찮은 편이다. 변호사와 학자 등 전문직 출신이 즐비하다. 대부분이 최상의 교육을 받고 명성을 쌓아온 ‘사회지도층’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들이 국회에만 들어가면 만사 제쳐 두고 정쟁에 휩싸인다. 언제라도 일전을 불사하는 전위부대의 용병처럼 몸싸움의 선봉이 된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아직도 여지없이 후진국이다.
요즘 학계에서는 민주주의의 질(質)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민주주의도 다 같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양질의 민주주의가 있는가 하면 질 낮은 민주주의도 있다. 투명한 공정선거가 정기적으로 치러진다면 일단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보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기본 요건만 갖췄을 뿐이다.
민주정치의 질을 좌우하는 관건은 정치가 국민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국민의 요구에 적절한 응답을 하는가이다. 국민에 대한 정치의 반응성(responsiveness), 그리고 정치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가 그 핵심이다. 선거 때만 반짝 국민을 위하는 척하다 선거가 끝나면 국민의 목소리는 들은 척도 않고 제 사람 심기, 지역구 챙기기, 공천 줄서기에만 여념이 없다면 선거가 아무리 공정하게 치러지더라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민생현안은 늘 뒷전인 국회, 강행과 저지의 폭력적 충돌 속에서만 예산 처리가 되는 국회, 나라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국회가 제대로 된 의회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2월 임시국회를 개원하면서 여야 간에 국회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만시지탄이지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조직적으로 동원된 국회의원과 그 보좌진이 해머와 톱을 들고 의사당을 누비는 모습이 전 세계로 전파를 타지 않았으면 우리의 국가 브랜드 가치가 지금보다 크게 높아졌을 것이다. 이제라도 국회의 후진성을 보란 듯이 세계만방에 떨치는 일만큼은 제발 없었으면 한다.
유난히도 길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풀리면서 임시국회도 문을 열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구제역과 전세난 등으로 국민의 마음이 뒤숭숭하고 꿈자리도 개운치 않다. 울적한 민심을 달래고 밀린 현안을 처리하려면 국회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이번 국회부터 의사결정 과정의 엄밀성, 정책의 내용적 충실성, 정책 결과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가 모두 높은 ‘명품정치’를 보고 싶다고 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양질의 정치 덕분에 국민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모습을 보고 싶을 따름이다.
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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