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
카다피에게 준 인권상
반미(反美)는 민족 자주 반제 반외세와 함께 한국 좌파를 관통하는 대표적 코드다. 좌파에게 반미냐 친미냐는 선악을 가르는 절대적 기준과도 같다. 쿠데타로 집권하고 부패해도 반미면 숭배의 대상, 친미면 무조건 타도의 대상이었다. 1970년대 반체제 좌파 세력이 북한의 김일성과 함께 리비아의 카다피, 쿠바의 카스트로 같은 반미 독재자들을 영웅시한 것도 그래서다.
▷불교계의 대표적 좌파로 알려진 진관 스님은 2002년 6월 ‘민중의 소리’에 ‘우리에게는 카다피 같은 지도자가 없는가’라고 한탄하는 글을 썼다. 그는 “카다피 대통령은 미국을 몰아내고도 얼마나 잘사는 나라가 됐는가. 우리도 미국 없이 잘살 수 있다는 모범을 리비아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일갈했다. 42년 동안 철권통치를 한 카다피는 지금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을 살육해 전 세계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리비아 민중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인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고 있는 모범적인 나라가 됐다”고 한 진관 스님의 요즘 심정은 어떨까.
▷‘좌파의 대부’였던 고 리영희 교수도 생전에 카다피를 찬양했다. 그는 자서전 ‘대화’(2005년)에서 “신생 독립국가인 리비아에서 쿠데타로 서구제국주의 괴뢰왕조를 전복한 카다피는 즉시 서방제국주의 자본이 소유했던 유전의 국유화를 단행했어요. 이것은 아랍세계 인민이 결정적으로 서방 자본주의의 착취를 거부하는 몸부림이었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내 현실로 말미암은 질식과 절망의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과 같은 기쁨을 느꼈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1990년 창립된 불교인권위는 2003년 카다피에게 불교인권상(賞)을 수여했다. “자유와 정의 평등의 대의를 지원하기 위해 수행해 오신 선구자적 역할을 높이 평가하며 고귀한 성품에 대한 찬사와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주창하는 휴머니즘적 사상에 전폭적 신뢰를 보낸다”는 이유였다. 불교인권위는 1996년과 2001년 두 차례 리비아를 방문하고 리비아친선협회도 만들었다. 좌파의 이상국가가 고작 카다피의 리비아였단 말인가. 카다피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을 전투기로 폭격하는 인민의 도살자다. 불교인권위는 카다피에게 준 불교 인권상을 취소함이 옳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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