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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의 저울로 달아본 수쿠크

namsarang 2011. 3. 4. 23:38

[동아광장/송우혜]

국익의 저울로 달아본 수쿠크

 

 

전에 중국 지린(吉林) 성 옌볜 조선족자치주에 독립운동 자료를 수집하러 가서 두어 달 지낸 적이 있다. 그때 ‘민족’이란 명제를 놓고 우연히 경험한, 뜨거웠던 감흥이 생생하다. 당시 옌볜자치주 정부의 고위층이었던 한 조선족 가정에서 묵었는데 밤마다 그 집 부인이 청나라 때가 배경인 중국 TV 연속극에 나오는 대사를 동시통역하듯 한국어로 옮겨주어서 재미있게 시청했다.

그 부인이 하루는 이런 말을 했다. “생각해 보면 모국어라는 것이 아주 특별해요. 우리 조선족은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한어(漢語)를 배우고 직장에서 한족(漢族)과 한어로 말하면서 지내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쓰는 한어는 거의 한족 수준입니다. 그런데 사극을 보면 달라요. 청나라나 명나라 배경의 사극이면 대개 알아듣는데, 한나라같이 시대 배경이 먼 연속극을 볼 때는 못 알아듣는 부분이 많아져요. 시대가 멀어질수록 옛날에 쓰던 고어체 말투가 많아져서 그런데요. 한 가지 희한한 건 한족은 달라요. 어른은 물론이고 어린애들까지 평소 전혀 배우지 않은 한나라 때 사극에 나오는 고어를 그대로 알아듣고 이해하거든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그건 우리 민족의 경우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고어에 대한 특별교육 없이도 시대극에 나오는 고어체 말투를 본능적으로 알아듣지 않는가. 뜻밖의 곳에서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지닌 본질 중 하나를 발견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투자이익 좇는 자본의 세계화

‘민족’이란 그처럼 애틋한 존재이다. 그러한 우리 민족공동체가 대한민국이라는 큰 울타리를 보호막 삼아 존재하고 활동한다. 당연히 자주 ‘국익(國益)’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현재 국가적 현안이 된 ‘수쿠크(이슬람채권)법’을 둘러싼 커다란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이 든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쿠크 소동’의 근본 원인은 이슬람 세계의 윤리적 타락이다. 이슬람 율법을 지키려면 문자 그대로 성실하게 지키든지 아니면 율법 지키기를 아예 포기해야 하는데, 그들은 제3의 길을 선택했다. 이슬람 율법에 있는 ‘이자를 받지 말라’는 규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이자 수익을 거두려고 ‘수쿠크’라는 교묘한 편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수쿠크라는 형태의 채권은 자본을 직접 투자해 이자를 받는 대신 투자금으로 부동산을 구입해 임대료를 받는 형식으로 이자를 챙기다가 자본을 회수할 때는 그 부동산을 다시 팔아서 해결한다. 외형상으로는 이슬람 율법을 지킨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슬람 율법의 근본정신을 죽인 것이니, 막중한 윤리적 타락에 해당한다.

문제는 수쿠크 투자의 형태가 ‘부동산 거래’이기 때문에 사고팔 때마다 부동산거래에 따른 각종 무거운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그간 한국에서는 수쿠크 거래에 대한 세금 감면이 없었다. 따라서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각종 세금을 모두 내면서는 투자 이익이 별로 없으므로 이슬람 머니가 한국에 투자되지 못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미 2009년 국회에 ‘조세특례제한법 일부 개정안’을 제출하여 수쿠크 투자에 대한 조세 감면조치를 하려고 했으나 심사가 보류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개신교 계통에서 수쿠크에 대한 조세 감면 시도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슬람 자본의 유입을 막으려는 의도인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슬람 세계의 윤리적 타락인 수쿠크에 의지해서 이슬람 머니를 막으려는 행위에 해당한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있다. 이슬람 자본가들이 그 애처로운 편법에 불과한 수쿠크의 제약과 불편함을 포기하고 일반채권 형태의 투자를 실행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UAE 원전수주 모두 기뻐했는데

두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도 즉시 이슬람 자본이 유입될 것이다. 요즘 세상은 ‘자본의 세계화’가 이루어져서 어떤 자본이든 투자 이익을 좇아 세계 어디나 찾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수쿠크라는 크고 불편한 뿔을 떼어버린 홀가분한 형태의 이슬람 자본 유입은 도저히 막아낼 길이 없다. 현재 우리 자본시장에 유입되는 많은 외국인의 투자가 소유주의 신원이나 성향을 따지지 않고 이뤄지는 것과 같다. 그런 상황에서는 “이슬람 자본은 종교적 침략과 직결돼 있고, 테러와도 직결된다”는 식의 논리는 설 자리를 잃는다. 이슬람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와 원전수출 계약이 성사됐을 때 많은 국민이 기뻐한 것을 생각해 보라. 세계는 날로 점점 더 좁아지고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수쿠크 문제를 고찰해야 한다. 이제 ‘국익’이라는 저울에 달 때 수쿠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진지하게 숙고할 시점이다.

                                                                                                                                                               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swoohy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