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헌진]
‘감시의 눈’ 넘치는 베이징서 외신기자로 산다는 건
“신분증을 보여 주세요.” 5일 오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개막식을 취재하기 위해 런민(人民)대회당으로 향하는 길에 공안으로부터 수없이 들은 소리다. 전국인대에는 중국 국가 지도자들이 모두 모이는 만큼 철통보안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심하다. 이날 전국인대 취재와 인근 국가박물관 특별전시회를 보고 돌아오는 반나절 동안 기자는 가방 X선 검사 3번과 공항 검색 수준의 몸수색을 2번이나 거쳤다. 신분증을 제시한 경우는 10번이 넘었다. 3, 4m 앞에서 분명 신분증을 확인했음에도 또다시 다른 공안이 신분증을 요구했다. 공안 통제선 안이라 텅 빈 도로에 기자 일행 7명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베이징의 길거리에는 ‘붉은 완장’이 넘친다. 중심부의 큰길에는 수십 m, 외곽에는 수백 m마다 ‘치안순찰 지원자’라고 쓰인 붉은 완장을 두른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육교 위, 지하철역 입구, 버스 정류장 등 어디에나 있다. ‘붉은 완장’들은 오래전에 퇴직한 할머니 할아버지, 아파트 주차 요원과 청소부 등이지만 공안에게 여러 차례 교육과 훈련을 받았고 공안의 지시를 받는다고 중국 관영매체는 전한다. 파즈(法制)일보는 현재 베이징에 공안을 포함해 73만9000명이 ‘민관 합동’으로 치안활동 중이라고 6일 전했다. 베이징 2902개 구역마다 인구 100명당 1∼3명꼴로 24시간 상시 순찰이 이뤄진다.
첨단기술도 활용된다. 무장경찰부대(무경)의 기관보 런민우징(人民武警)보는 “이번 양회(兩會) 경비의 특징은 첨단장비와 기술의 사용”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 등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외신기자들은 핵심 관리 대상이다. 한국을 포함해 외국 기자들의 집에 공안이 불쑥 찾아와 신분증을 검사하는 일도 있고 “불법 시위 현장에 가지 마라” “취재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취재하지 마라” 등의 경고성 전화도 걸려온다. 미행을 당했다는 동료 특파원도 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도청이 떠올라 말조심을 하고 있다. 일부 외신기자는 연행이 됐다든지, 심지어 구타까지 당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억압적 분위기가 한층 높아진 이유는 양회에다 북아프리카발 재스민 바람이 겹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일반 중국인의 시선은 곱지 않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偉博)’에는 보안 경비를 비롯해 양회 경비 예산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중국의 오늘날 굴기(굴起·우뚝 일어섬)는 개혁개방 덕분이다. 지나친 감시와 긴장 조성은 개혁개방의 기본 정신과 어긋날뿐더러 중국 발전의 동력을 갉아먹을 것이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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