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거위의 꿈, 분단 앓이'

namsarang 2011. 3. 30. 22:12

[사도직 현장에서]

'거위의 꿈, 분단 앓이'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다. 태어날 때부터 귀 모양이 기형인 영숙(가명)이 성형수술을 위해 병원에 찾아갔다.

 영숙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엄마는 탈북 후 중국에 숨어 살다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이고 아빠는 중국인(한족)이다.

 영숙이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귀 때문에 놀림을 받은 터라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활발하던 성격도 조금씩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1~2년 정도 수술과 치료를 받으면 정상에 가까운 귀 모양을 갖게 된다고 한다. 고마운 의사 선생님 덕분에 영숙이는 안경도 쓸 수 있고 친구들 놀림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영숙이처럼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중도 입국' 새터민 어린이들이 늘고 있다. 부모 또는 부모 중 어느 한 쪽이 새터민이고 중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한다. 어머니가 탈북자인 경우가 많은데, 어릴 때 중국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숨어 살거나 공안에 한두 번 잡혀갔던 경험이 있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

 새터민 어린이, 청소년들은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한다.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북한 출신임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조선족' 또는 '어려서 중국에 살았다'는 정도로만 말한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 이후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에 빠졌을 때 태어나 아주 어릴 적부터 힘든 밭일이나 땔감을 져 나르는 고된 노동을 하면서 자란 탓인지 체격이 왜소하고 체력도 약하다. 한창 공부할 시기에 중국을 떠돌며 불안정한 생활을 해서 그런지 15살이 넘도록 한글을 잘 모르고,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많다. 남한에서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흔히 배우는 영어를 잘 못하는 것도 따돌림 원인이 된다. 또 상당수 새터민 아이들이 양부모(養父母) 또는 한부모와 살거나 어려서 부모와 떨어져 친척집에 맡겨져 자랐기 때문에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이루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새터민 청소년들은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심각한 성장통을 앓는다. 모든 것이 낯설고 막막한 남한 사회에서, 편견의 높은 장벽에 가로막힌 현실에서 '분단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이 아이들 누구나 가슴속에 한 가지쯤 꿈을 품고 있음을, 그리고 언젠가 현실이란 높은 벽을 넘어 그 꿈을 이루리라는 것을.

                                                                                                                      임순연 수녀(사랑의 씨튼수녀회, 인천교구 새터민지원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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