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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품앗이’로 입법권 스스로 훼손하는 의원들

namsarang 2011. 4. 6. 23:21

[기자의 눈/이재명]

‘서명 품앗이’로 입법권 스스로 훼손하는 의원들

 

 

국회의원들에게 유리하도록 ‘당선무효 완화’ 규정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 발의에 참여했던 한 의원 측은 4일 기자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괜히 정치개혁에 역행하는 의원으로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의원은 이날 개정안 발의를 철회했다.

문제의 개정안 발의에 참여한 의원 가운데 이날 3명이 자신의 이름을 뺐다. 추가로 7, 8명도 서명 철회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비난 여론이 들끓자 ‘아차’ 싶은 모양이다.

이번 논란은 근본적으로 표로 먹고사는 의원들이 국민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한 데서 출발한다. 국민은 “이 정도면 됐다”가 아니라 “더 달라져야 한다”고 정치권에 끊임없이 주문하고 있다.

이른바 ‘품앗이’ 관행도 법안 내용에 대한 동료의원 간의 사전 검증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국회법상 법안을 발의하려면 법안을 만든 의원을 포함해 최소 10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의원들끼리 서로 법안에 서명을 해주는 관행이 ‘미풍양속’처럼 뿌리 내린 이유다.

이번에 법안서명을 철회한 한 의원 측은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입법로비 사건이 터진 뒤 ‘품앗이’ 관행에 균열 조짐이 보인다. ‘문제 법안’에 덜컥 서명했다가 수사 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낸 법안이 정부입법에 밀려 창고에 수북이 쌓여가는 그릇된 관행이 되풀이되다 보니 의원들 스스로도 법안 통과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5일 현재 각 상임위에 계류돼 있는 의원발의 법안은 6036건에 이른다. 한 법안에 10명씩 서명했다면 6만 건이 넘는 서명이 의미 없이 잠자고 있는 셈이다.

발의법안 중에는 함량 미달도 적지 않다. 올해 1월 한 의원이 낸 2개 개정 법안은 모두 법조문에 있는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 바꾸는 게 전부였다. 앞으로 상향식 공천이 정착되면 실적 부풀리기용 법안이 더욱 양산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부실입법과 ‘방탄입법’에 대한 여론의 비판에 일부 의원은 “의원의 소신이 담긴 법안은 폐기되기 일쑤고 정부의 ‘청부입법’은 최우선으로 처리된다. 입법권이 행정부에 치여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기자에게는 그 항변이 “의원들 스스로 국민이 부여한 입법권의 가치를 살리기 위한 노력과는 담을 쌓았다. 국민 아닌 의원 보호에만 열을 쏟다 보니 국회가 무기력해졌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이재명 정치부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