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음식이야기

<21> 콩나물국

namsarang 2011. 4. 1. 17:55

[윤덕노의 음식이야기]

<21> 콩나물국

기사입력 2011-04-01 03:00:00 기사수정 2011-04-07 04:47:45

 

어젯밤 마신 술로 속이 쓰릴 때 찾는 음식이 해장국이다. 세계 각국에는 다양한 해장 음식이 있고 우리나라 역시 해장국만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랄 정도로 가짓수가 많다. 그렇지만 그중 한국인의 쓰린 속을 제일 빨리 풀어주는 해장국은 역시 콩나물국이다.

사람들이 콩나물국으로 해장을 한 역사는 꽤 오래전부터다. 콩나물로 쓰린 속을 풀었던 것은 다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저 흔한 채소인 콩나물을 넣고 끓인 뜨거운 국물을 떠먹으며 허투루 속을 달랬던 것이 아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콩나물에 아미노산과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에 숙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표현방법이 달랐을 뿐 동양에서는 6세기 무렵에 이미 이런 사실을 알았던 모양이다. 옛날 의학서에 콩나물의 숙취효과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콩나물에 관한 기록은 6세기 중국 남조시대인 양나라 때 도홍경이 쓴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集注)라는 책에 처음 보인다. 여기에 황권(黃券)이라는 약재가 수록돼 있는데 콩에서 나온 새싹을 말린 것이라고 했으니 바로 콩나물이다. 책에는 콩나물을 말려놓은 황권이 위 속의 열을 내리는 데 효과가 있다고 쓰여 있다. 술을 마신 후 속에서 열이 날 때 콩나물국을 먹으면 속이 풀리는 이유다. 또 신농본초경집주에서는 황권을 복용하는 방법으로 끓여서 먹는 것이 좋다고 했다. 콩나물을 끓여서 먹으니 콩나물국이고, 위의 열을 식히는 데 좋다고 했으니 해장국으로 안성맞춤인 것이다.

신농본초경집주에 보이는 황권의 약효는 고려와 조선시대 의학서에도 똑같이 전해 내려온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콩나물은 고려 때인 고종 23년(1236년)에 발행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기록이 보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우리의 의학서인데 여기에도 콩에서 나온 싹을 말려서 약으로 쓴다고 했으니 바로 콩나물을 말린 황권이다.

황권인 콩나물의 복용 방법은 주로 끓여서 먹는 것인데 그렇다면 콩나물국은 우리나라에서 늦어도 고려시대 이전부터 다양한 용도의 약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해장국으로도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콩나물국은 전국적으로 먹는 음식이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전주 콩나물국이다. 예전부터 명성을 떨쳤는데 개화기 때 잡지인 별건곤(1929년 12월호)에서는 서울의 설렁탕, 평양의 어복쟁반과 전주의 콩나물 국밥을 서민들의 3대 명물 음식으로 꼽았다. 돈이 많고 적고 또 신분이 높고 낮고를 떠나 누구나 즐겨 먹을 수 있고, 값이 헐한 데다 맛도 구수하며 술 마신 후 속도 잘 풀리니 명물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 이유다.

전주 콩나물국이 유명한 이유는 전주가 콩나물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전주의 역사를 기록한 전주시사(全州市史)에는 조선시대에도 콩나물이 전주 일대에서 많이 생산되었고 그래서 전주 사람들은 하루 세끼 식사에 모두 콩나물을 반찬으로 올렸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콩에다 물을 주고 콩나물을 기르더라도 전주 콩나물이 질이 좋은 것은 바로 전주의 물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맛의 고장이라는 전주 음식의 특징은 사실 콩나물이다. 전주를 대표하는 한정식과 비빔밥도 가장 큰 특징은 콩나물을 많이 넣는 것이니 해장국으로 전주 콩나물국이 유명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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