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상담

(100) 마음에 안 드는 자비송

namsarang 2011. 5. 2. 23:33

[아! 어쩌나?]

(100) 마음에 안 드는 자비송




Q. 마음에 안 드는 자비송
 세례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아들이 미사참례를 하고 오면 영 마뜩잖은 표정을 짓습니다. 왜냐고 물으니 미사 중에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하는 기도문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 그렇게 애처롭게 마치 구걸하는 사람처럼 기도해야 하느냐고 하는데 저는 습관적으로 기도해서 생각지도 못한 것이라 대답할 말이 없어 "그냥 따라 하면 되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들 말처럼 기도문이 너무 저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벗으로 삼으셨다고 성경에 나와 있는데 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저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요?

 
 

A.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미사 중 그 기도문은 주님을 맞을 때 마치 백성이 왕을 맞이하듯 하는 데서 기원한 기도문입니다. 그 기도문에 대한 심리적 풀이를 해 드리지요.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기분 좋은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지만 때로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분명히 저건 아닌데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 내 속을 상하게 하거나, 심지어 속을 뒤집어 놓는 사람을 만나면 참으로 힘이 듭니다. 그런데 이럴 때 교회에서는 '용서'의 미덕을 강조합니다. 피해를 본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해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내가 어떤 마음을 먹는가보다 내 마음을 힘들게 한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속이 분노로 가득 차 있을 때 가장 괴로운 사람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분노는 불덩어리인데 그것을 오래 가지고 있어봐야 데이고 상처입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에, 용서라는 작업을 통해 얼른 마음 밖으로 내어놓고 싶어합니다.
 
 분노가 심할수록 동시에 용서하고 싶은 마음도 강하다는 것인데, 상대방이 나에게 보이는 태도에 따라 쉽게 용서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보여야 용서하기가 편할까요? 가장 좋은 태도는 변명하지 말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입니다.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에서 "실수에 대해 변명을 하면 오히려 그 변명 때문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된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왜 그럴까요?
 
 변명이란 상대방의 분노에 휘발유를 끼얹는 것과 같은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남자 연예인들 병역문제가 심각하지요. 한창 인기 있고 돈을 벌 나이에 입대하게 되면 인기도 잃고 돈도 못 버니까 입영연기를 할 때까지 하다가 서른 즈음에 가기도 하고, 신체적 결함을 입증해 면제를 받으려 하기도 합니다.
 
 또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을 시도했다가 발각된 경우에는 자신이 무죄임이 판명나더라도 변명으로 일관하면 사람들에게서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용서는커녕 잘못하면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변명이 분노라는 불에 휘발유를 뿌린 탓입니다. 그러나 자기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잘못을 빌거나 사과를 하면 "그래, 잘못은 했지만 잘못을 인정한다니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지"하면서 용서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인 경영 컨설턴트인 야스다 시게가츠는 기업의 실수 때문에 고객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첫째, 일단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사사로운 것을 설명하고 변명하지 않는다. 왜냐면 잘못했다간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앞으로 개선책을 밝힌다. 셋째,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일단 사과부터 한다. 넷째, 신뢰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다섯째,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달한다. 최근 한복 문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시내 한 유명 호텔은 이 수칙을 지키지 않고 변명하는 바람에 문제가 더 커졌습니다.
 
 가족 드라마에서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화가 났을 때 어머니가 자식들을 나무라면서 "얼른 잘못했다고 말씀드려"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그러면 머리가 모자란 자식들은 "왜 나만 갖고 그래요,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어요?"하면서 바득바득 대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영리한 아이들은 바로 사과하고 잘못했다고 해서 아버지 분노를 식힌 후 대화를 시도합니다.
 
 이것은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뿐 아니라 우리와 하느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크고 작은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화가 나 있으실지도 모르는 하느님께 가장 먼저 드려야 하는 기도는 '이것도 해달라, 저것도 해달라'하는 청원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속상한 마음을 풀어 드리는 기도여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비송이 미사 초입부에 붙박이장처럼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비송은 우리가 하느님께 저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처지를 스스로 인정하고 드리는 자연스러운 기도입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