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해도 달도 마주 뜨는 소동파의 호수
기사입력 2011-05-06
‘일조쌍양’이라고 이름붙여 전래되는 서호십경에 덧붙일 만한 봄날아침 시후 호의 해돋이. 15km 호안에서 가장 높은 고(孤)산(38m)의 숲위로 뜨는데 그 해가 거울 같은 시후 호의 수면에 비쳐 더더욱 아름답다. 왼편의 다리는 시렁교다.
중국차엽박물관이 있는 항저우 시 외곽 룽징로의 쌍펑촌 차밭.대낮인데도 옅게 안개가 드리워진 계곡의 차밭에서는 고깔 쓴 아낙들이 시후룽징차로 만들 차잎을 따느라 여념이 없다.
1073년 이맘때쯤 어느 봄날. 항저우 통판(지방관리) 소동파(본명은 소식·1036∼1101)가 첸탕(錢塘) 호에 배를 띄웠다. 게서 춘풍 즐기던 당대의 문장가는 넘치는 격정을 주체 못해 이렇게 시 한 수를 읊었다. 호수를 중국의 4대 미인 서시(西施)에 비견하는…. 서시라 하면 춘추전국시대 ‘오월동주(吳越同舟)’란 고사를 탄생시킨 월나라의 절색.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인 월(越)나라 왕 구천의 청으로 적국인 오(吳)나라로 건너가 왕 부차를 유혹한다. 정사는 팽개치고 서시에게 빠져 미색만 탐하던 오왕. 결국 월에 의해 망한다. 이게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고사성어의 풀스토리이니 그 주인공은 서시다. 한편 소동파의 이 시 한 수로 호수는 제 이름을 잃었다. ‘서호(西湖·시후 호)’에 비긴 이 시가 빌보드차트 1위곡처럼 당시 회자되면서다.
그로부터 938년 후인 올 4월 23일. 그날도 시후 호에는 봄볕 아래 삼판(나무로 만든 놀잇배)이 점점이 떠있었다. 15km 호안의 수양버들 가지는 나른한지 축 늘어졌고 숲 그늘 짙은 쑤디(蘇堤·소동파가 항저우 재직 중 시후 호를 준설하며 파낸 흙으로 호수 서쪽에 쌓은 2.3km 제방)의 산책객 발걸음도 느릿하기는 마찬가지. 봄날의 쑤디는 ‘서호십경’ 중 하나인 ‘쑤디춘샤오(蘇堤春曉)’로 대변된다. 봄날 새벽녘 파릇파릇 새 잎 돋아난 온갖 초목이 생기를 되찾는 모습을 두고 한 말인데 그날이 딱 그랬다.
이어 호안 동편, 고산(孤山) 너머로 붉은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뜻밖의 시후 호 해돋이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무채의 세상에 오로지 하나, 붉은빛의 아침 해. 묵화의 붉은 낙관처럼 돋보였다. 해가 솟자 세상은 개벽했다. 안개는 혼비백산 사라지고 호수는 제 빛깔을 되찾았다. 호수 물에도 태양은 뜬다. 수면에 비친 고산 위의 해다. 하루 아침에 맞는 두 개의 해. 서호십경에 부록으로 더할 ‘일조쌍양(一朝雙陽)’이라 하면 어떨지.
이런 정중동(靜中動)도 오래가진 못했다. 해가 솟자 이내 붐비기 시작했다. 오전 6시 반인데도 깃발 든 가이드가 한 무리를 데리고 나왔다. 삼판의 사공들도 호안에 배를 맸다. 쑤디 산책로는 조깅, 자전거, 산책객으로 부산했고 호안도로 북산로도 오토바이와 차량으로 소란해졌다. 항저우를 찾는 관광객은 한 해 6300만 명. 모두가 시후 호를 들를 터이니 이런 광경은 당연지사. 그런 시후 호라도 밤엔 정적에 휩싸인다.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야외공연 ‘인샹시후(印象西湖)’는 그런 시후 호에서 산과 호수를 무대로 안갯속에서 펼치는 멋진 무대다.
소동파에게 항저우는 영욕이 교차했던 장소다. 황제에게 바친 보고서의 문구에 시비를 건 반대파로 인해 사형수로까지 몰렸다. 그를 구한 건 황제. 재주를 높이 사서다. 그 덕에 목숨만 부지한 채 황저우(黃州)에서 귀양살이를 한다. 그가 복직해 항저우로 되돌아온 건 6년 만(1089년). 시후 호를 준설하고 쑤디를 쌓은 건 그때다.
그런 항저우인 만큼 소동파의 유적도 많다. 쑤디 물가의 수양버들과 쑤디를 잇는 다리(6개). 서호십경의 ‘쑤디춘샤오’ 등등. 동파로, 학사로 등 거리에도 이름이 남았다. 쑤디 북단의 기념비와 남단의 동상은 후대에 세운 것. 음식도 있다. ‘동파육’이다. 삼겹살을 황주(갈색의 쌀 술로 이곳 특산)에 재워 낮은 온도에서 뭉근하게 익힌 것이다. 황저우(黃州) 유배 시절 친구가 찾아오면 늘 해주던 요리인데 바둑에 몰두하다 보니 태우기 일쑤였단다. 그래서 낸 묘안이 천천히 오래 익히는 것이었는데 담 백한 동파육은 그렇게 태어났다. ‘항저우 버전’은 다르다. 소동파가 황제의 부름으로 항저우를 떠날 당시 선정에 감읍한 주민들이 돼지와 술(황주)을 너도나도 선물했는데 그걸로 잔치를 벌이던 와중에 태어났다는 설이다.
항저우에서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이 있다. ‘동방견문록’(1299년 완성)의 주인공 마르코 폴로(1254∼1324)다. 13세기에 그가 원나라에 머문 기간은 17년. 원 황제의 총애 아래 중국 곳곳은 물론이고 멀리 버마와 인도에까지 특사로 나갔다. 동방견문록은 그런 17년간에다 고향 베네치아와 원나라를 오갔던 7년의 목숨 건 여행길에서 보고 들은 모두를 담은 기행문이다. 그런데 거기서도 항저우(책에는 ‘킨사이’ 왕국이라고 기록)는 유독 상세히 기술돼 있다. 쪽수도 가장 많다. 항저우에 대한 이런 지극한 관심은 고향 베네치아와 너무도 닮은 데서 비롯됐다. 향수병을 치료해 줄 유일한 곳이었을지도 모르고….
마르코 폴로와 항저우의 인연은 경항대운하(베이징∼항저우 2700km 내륙뱃길)에서 비롯됐다. 운하는 시안에서 뤄양으로 천도(604년)한 수나라(581∼618년)의 양제가 착공했다. 완공된 건 701년. 이 운하는 대륙 동편의 주요 도시를 이으며 물자와 문화를 교류시켜 발전의 대동맥이 됐다. 하지만 수양제에게는 나라를 몰락으로 이끈 ‘경국지운(傾國之運)’이었다. 그런 운하의 중요 도시 중에는 양저우도 있었는데 원 황제는 1277년 마르코 폴로를 파견해 세무를 감독하게 한다. 3년 6개월에 걸친 마르코 폴로의 양저우 체류는 그렇게 시작됐다.
항저우는 운하의 남쪽 끝. 수세기에 걸쳐 현재 모습으로 완성된 운하의 최초 시발점이기도 하다. 항저우도 양저우만큼 중요한 도시였다. 해운과 수운이 연결되는 데다 쌀, 차(룽징) 등 농산물이 풍부하며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해서다. 금에 망한 송이 남송을 세워 항저우에 새 도읍을 정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데 그 남송의 항저우마저 원의 바얀 장군에게 함락당한다. 마르코 폴로의 양저우 발령 한 해 전 일로, 덕분에 마르코 폴로가 항저우를 방문했을 때는 다행히도 남송의 화려한 문물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동방견문록에서 항저우 부분을 읽다가 놀랐다. 책 속의 묘사가 730여 년 후인 지금, 내 눈에 비친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다. 규모와 내용은 차이가 있었지만 항저우라는 도시의 특색만큼은 바뀌지 않았음이다.
이런 남송의 항저우 모습을 나는 ‘쑹청첸구칭(宋城千古情·송나라 황제의 연회를 통해 당시 문화를 보여주는 1시간짜리 화려한 멀티미디어 쇼)’을 보러 간 송나라 테마파크 ‘쑹청(宋城)경구’에서 만났다. 송나라 군사가 지키는 성 안에 들어서니 저잣거리가 펼쳐졌다. 또 거리 식당과 주점에서는 초두부(시큼하게 쉰 두부) 등 각종 음식을 포함해 온갖 것을 팔았다. 그 부산함과 어수선함에서 송나라, 아니 중국이 살갑게 다가왔음은 물론이다.
동파육
항저우의 상업도시 전통은 지금도 여전하다. 비누 세제 등 생필품의 집산지로 중국에서 가족기업이 가장 많고 모두 알부자라는 소문이다. 800만 명이 살아도 그리 화려하지 않은 항저우의 중심가가 그걸 실증한다. 허름한 건물의 쇼윈도에 벤틀리, 페라리 등 최고급 수입 차가 진열된 모습이다.
항저우를 찾는 이들이 빼놓지 않는 곳이 있다. 시후룽징차 산지인 룽징이다. 항저우 시 외곽에 높지 않은 산악의 계곡을 차지한 차밭은 지금 찻잎따기가 한창이었다. 초록 산자락을 배경으로 펼쳐진 넓은 차밭 한가운데 찻잎 따는 아낙네의 동그란 대나무 모자만 돌출한 모습은 룽징차의 향기만큼이나 향기로웠다. 다음에 찾을 때는 길고 긴 차밭 계곡의 한구석을 차지한 차산지 메이자우(梅家烏) 마을에 들러 하룻밤 묵어가리라 다짐하며 항저우를 떠난다.
항저우 동남쪽 저장 성의 첸탕 강 하류에 위치한 중국 7대 고도(8000년 역사)이며 저장 성 수도. 상하이 남쪽 180km(북위 30도, 동경 120도).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크다(683km²). 동편으로는 항저우 만의 바다이고, 서쪽으로는 첸탕 강이 흐르며 도심에는 운하가 발달. 도로의 중앙선과 노변이 가로수로 무성할 만큼 도시 전체에 녹화가 잘된 그린시티다. 예부터 물자가 풍부하고 운하를 통해 물류가 잘 유통돼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나 있다. ‘쑤저우에서 태어나 항저우에서 살고 광저우의 음식을 먹으며 황산에서 일하고 류저우에서 죽으라’는 말에까지 등장. ‘하늘에는 천당이, 하늘 아래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는 말이 전래되는 곳. 주민은 800만 명. 관광센터 www.gotohz.com, www.96123.com
[기후] 아열대 계절풍지역. 한여름은 덥고 습하며 겨울에는 눈도 내린다. 여행 최적기는 지금(4, 5월).
[교통] 인천∼항저우, 상하이 아시아나항공 운항(1시간 30분 소요). 상하이(훙차오 역)∼항저우 자동차로 3시간 반, 고속철(CRH·www.zjrail.com)로 45분 소요. 항저우 시내 투어는 저렴한 공용자전거를 이용하면 편리. 택시는 기본요금(3km) 10위안에 1km마다 3위안 추가. 승차 거부가 많고 가끔은 역주행도 불사. 시후 호 유람은 3, 4인용 삼판선부터 대형 유람선을 이용하는데 한 시간 이내 소요.
[음식] 예로부터 ‘미식의 고장’으로 소문난 곳으로 식당 수만 9700개. 상하이식과 거의 비슷하며 담백해서 먹기에 부담이 없음. 동파육, 동파어, 거지닭(진흙에 싸서 구운 닭요리)이 대표적인 음식. 알코올도수 13도 내외의 쌀로 빚은 황주가 특산. 맛집은 전강주루(錢江酒樓· 0571-8512-7977), 화중성천외천반점(花中城天外天飯店·www.hzhzc.com ·0571-8797-9922), 플로렌스 다이닝홀(Florence Dining Hall·0571-8792-2205)
[공연] 장이머우 감독이 총연출한 ‘인샹시후’(www.hzyxxh.com)와 송나라 테마파크의 전용극장 실내에서 하루 7회 펼치는 대형가무극 ‘쑹청첸구칭’(www.showhz.com)이 유명. 인샹시후는 시후 호의 수상무대에서 야간(매일 2회)에만 펼치는 야외공연으로 비가 내려도 한다(비옷 제공).
글·사진 중국저장성항저우=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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