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
남기는가, 나누는가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 중에 ‘유재(留齋)’가 있습니다. 유재는 김정희의 제자 남병길(南秉吉)의 호인데 그가 뒷날 추사의 유고를 모아 ‘담연재시고(覃연齋詩藁)’와 ‘완당척독(阮堂尺牘)’을 펴내 오늘날까지 추사의 작품이 세상에 전해지게 만든 인물입니다. 그는 훗날 벼슬이 이조참판에까지 이르렀는데 추사가 제주에 유배생활을 할 때 어떤 연유로 그의 호인 유재를 현판으로 새기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추사의 제자인 허소치(許小癡)의 ‘소치실록’의 부기(附記)에 보면 추사 김정희가 ‘제주에 있을 때 써서 현판으로 새겼는데 바다를 건너다 떨어뜨려 떠내려간 것을 일본에서 찾아온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 궁금증을 더합니다.
‘유재’ 현판은 예서로 쓴 ‘유재’라는 글자와 행서로 쓴 풀이가 강렬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어 깊은 멋을 느끼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삶의 자세로 ‘유재’의 의미를 풀어 챙기기보다 남기는 미덕을 강조한 해제가 일품이라 욕망과 물질에 마음이 어두워진 오늘날의 현대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유재의 풀이글은 이렇습니다.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겨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巧以還造化)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겨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祿以還朝廷)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겨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財以還百姓)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겨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留不盡之福以還子孫)
다하지 않는 여유, 그리고 다른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미덕은 크게 보아 생명세계를 운행하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오직 인간만 다하고도 모자라 아우성이고, 넘쳐도 멈출 줄 모른 채 파국을 자초합니다. 그런 세상에는 아량도 없고 도량도 없습니다. 아량도 없고 도량도 없는 세상에는 도덕도 없고 신뢰도 없습니다. 그런 세상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믿음이 스러져 사막처럼 황량해집니다. 나라를 이끌어야 할 고위공직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고정 메뉴처럼 재산 증식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기업가들은 편법으로 재산을 상속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법적 포장술을 개발합니다. 남기지 않고 알뜰하게 챙기려는 욕심, 누구와도 나누지 않으려는 욕심이 세상을 얼룩지게 합니다.
채우고 넘쳐야 직성이 풀리는 세태, 2000여 년 전에 이미 노자는 ‘화려한 색을 추구할수록 인간의 눈은 멀게 되고, 섬세한 소리를 추구할수록 인간의 귀는 먹게 되고, 맛있는 음식을 추구할수록 인간의 입은 상하게 된다(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고 경고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궁궐은 화려하나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여 곳간이 비었다. 그런데도 비단옷 두르고 날카로운 칼 차고 음식에 물릴 지경이 되어 재산은 쓰고도 남으니 이것이 도둑이 아니고 달리 무엇이랴(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爲盜과)’고 개탄했습니다.
남김으로써 두루두루 돌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곧 자연의 흐름입니다. 한꺼번에 챙기고 탕진하고 싶어 하는 욕망, 넘쳐도 모자란다고 아우성치는 욕심 때문에 우리는 끝없이 고통에 시달립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말을 항상 되새기며 남기는 여유와 나누는 미덕을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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