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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봉산(道峰山) - 의정부시 주변(9-1)

namsarang 2011. 7. 26. 00:05

도봉산(道峰山)

 

서울시의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및 양주시에 걸쳐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해발 740m이며, 북한산과 함께 북한산 국립공원에 포함된다.

도봉산(道峰山)의 명칭은

①.큰 바위 길이 산 전체를 이루고 있어 도봉(道峰)이라 지었다는 설과

②.회룡사(回龍寺), 천축사(天竺寺) 등의 사찰에 무학대사의 중창 기록이 전하여 지는 것과 관련하여 조선왕조 창업의 길을 닦았다는 내용의 두가지 설이 있다.

자운봉(紫雲峰), 만장봉(716m), 선인봉(693m), 주봉, 우이암(牛耳巖), 5개의 암봉(巖峰)이 서쪽으로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5개 봉우리 중 만장봉(萬丈峰)은 이름 그대로 1만 길이 되는 바위벽으로 [택리지]에서 “함경도 안변부 철령의 한줄기가 남으로 5~6백리를 달려서 양주의 여러 작은 산이 되고, 북동쪽에서 비스듬히 돌아 들면서 갑자기 솟아나 도봉산의 만장(萬丈)이 되었다.” 고 기술하고 있다.

 

 

 

회룡사 (回龍寺)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虎院洞)에 소재하고 있는 사찰로서, 대한불교조종   제25교구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681년(신라 신문왕 1년) 의상(義湘:625∼702년)이 창건했을 때의 명칭은 법성사(法性寺)였다. 930년(경순왕 4년) 경보(慶甫), 1070년(고려 문종 24년) 혜거국사(慧炬國師), 1384년(우왕 10년) 자초(自超) 등이 각각 중창하였다. 특히 자초 무학대사(無學大師)는 이성계(李成桂)와 함께 이 곳에서 3년간 수도하였고, 이성계가 정계로 나간 뒤에는 자초가 홀로 남아 사찰을 중건하고 관세음보살상을 모셨다. 그 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이곳에 찾아와 절 이름을 현재의 회룡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설에는 이성계가 왕위에서 물러나 함흥(咸興)에 머물다가 1403년(태종 3년) 서울로 돌아와 이곳에서 수도하던 자초를 찾아오자 자초(自超)는 ‘회란용가(回鸞龍駕)’라 하면서 기뻐하였는데, 절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1630년(인조 8년) 비구니 예순(禮順)이 중건하였으며, 1881년(고종 18년)에는 최성(最性)이 중수하였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938년 비구니 순악(順岳)이 중수하고 칠성각을 지었으며, 1940년에는 석굴 법당과 요사채를 지었다. 이후에도 불사를 거듭하여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약사전· 삼성각· 선실· 요사채가 있다. 사찰 유물로는 신중탱화(神衆幀畵)와 오층석탑· 석조(石槽)· 노주(露柱) 등이 있다. 이 중 신중탱화는 1883년 수락산 흥국사(興國寺)에서 만든 것이다. 오층석탑에는 의상의 사리 1과가 모셔져 있다고 전하나 탑의 형식으로 보아 조선 전기의 유물로 추정된다. 석조와 노주도 조선 전기의 유물로 보인다.

 

 

 

망월사(望月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로서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에 있다. 신라 때인 639년(선덕여왕 8년)에 해호화상(海浩和尙)이 왕실의 융성을 기리고자 창건했다. 절의 이름은 대웅전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월봉(月峰)이 있어 마치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신라 경순왕(재위 927∼935년)의 태자가 이곳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066년(문종 20년) 혜거국사(慧拒國師)가 중창한 이후의 연혁은 확실하지 않으나,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황폐해졌다가 조선시대인 1691년(숙종 17년) 동계(東溪) 설명(卨明)이 중건했다. 1779년(정조 3년)에 영월(暎月)이 선월당(先月堂)을 세웠고, 1800년에는 선월당을 영산전(靈山殿)터로 이전했으며, 1818년(순조 18년)에는 칠성각을 신축했고, 1827년에는 절 전체를 중수했다.

1880년(고종 17년) 완송(玩松)이 중건한 뒤 1882년 완송이 영산전을 다시 세웠으며, 1884년 인파(仁坡)가 독성각(獨聖閣)을 건립했다. 1885년 완송이 약사전(藥師殿)을 건립했고, 1901년 인파가 큰방을 보수했다. 1906년 회광(晦光) 사선(師璿)이 선실(禪室)과 설법루(說法樓)를 중수했고, 1941년 김응운(金應運)이 약사전을 중건했다.

1969년 주지 춘성(春城)이 퇴락한 선실을 철거하고 2층의 석조 대웅전을 지었으며, 1972년에는 주지 도관(道觀)이 본래 있던 염불당과 낙가암(洛迦庵)을 헐고 현대식 건물의 낙가암을 새로 지었다. 1986년부터는 주지 능엄(楞嚴)이 대웅전을 헐고 선방, 관음전, 영산전, 요사채를 신축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석조전(石造殿)을 비롯하여 영산전· 칠성각· 낙가암· 선원· 범종각· 요사채· 범종루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망월사혜거국사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 122호)와 천봉 태흘(泰屹:1710∼1793년)의 부도(경기도 문화재자료 66호), 1793년에 세운 태흘의 천봉탑(天峰塔)과 1796년 수관거사(水觀居士)가 명(銘)한 망월사천봉선사탑비(경기문화재자료 67호)가 있다.

이밖에도 부도 1기와 탑다라니판(塔陀羅尼板) 1매, 위안스카이[袁世凱]가 1891년 이 절을 유람하고 쓴 망월사 현판, 영산전 전면에 걸려 있는 주련(柱聯) 4매 등이 있다. 이 사찰에 관한 옛 기록에는 천봉선사탑비문과 신수망월사기선실설법루기가 있다.

망월사에서 30km 떨어진 곳에 광법암(廣法庵)이라는 부속암자가 있는데 원래 영산전 앞에 있던 것을 1965년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망월사는 명승들을 많이 배출하여 경기 지방의 이름 있는 선(禪) 사찰로 유명하다.

 

출처 : 송산노인복지회관77
글쓴이 : 두드림 (Do drea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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