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11년 9월 8일 목요일
여야 共히 정당민주주의 지킬 책임 痛感해야
‘안철수 현상’은 우리 정당정치가 기능을 상실하고 있음을 확인해줬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내부 계파의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매여 동맥경화에 걸려 버린 느낌이 든다. 여야가 서로 으르렁대면서도 국회의원 세비(歲費) 인상 같은 공동 이익에 대해서는 철저히 담합하는 정치 행태에 국민이 매를 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안 씨가 “정치를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출마 의사 표명도 안 했는데 정치권이 흔들릴 정도라고 한다면 이렇게 허약한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겼다는 것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 황당하다”고 조롱할 정도가 됐다.
1958년부터 6년 동안 주한 미국대사관 문정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 정치의 격변기를 지켜본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 정치를 ‘소용돌이 정치’라고 평가했다. 국가와 개인을 이어주는 정당 같은 중간 단체가 역할을 못해 소용돌이와 같은 극단적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은 안 씨의 돌풍은 우리 정당정치의 지리멸렬 속에서 생겨났다.
김영삼 김대중 씨는 제왕적으로 당을 장악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새로운 인물을 받아들여 당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정치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쇄신하기를 바라는 민심에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요즘 정치권은 한국 정치를 이끌어갈 인재를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인재 충원 기능을 상실했다. 제대로 된 정당정치가 복원돼야 헌법에 명시된 대의(代議)민주주의를 구현하고 ‘길거리 정치’를 극복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시절이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진보와 보수, 인종차별이 없는 하나의 미국을 만들자는 감동적인 연설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해 흑인으로는 유일하게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2008년 치열한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뒤 대통령에 올랐다. 미국 대선에서도 로스 페로와 랠프 네이더 등 제3후보가 돌풍을 일으킨 적이 있지만 오랫동안 다져온 민주-공화 양당의 정당정치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사회 내부에서 분출하는 다양한 욕구를 정당들이 앞장서서 수용하고, 새로운 정치인재 발굴과 정책 수립 등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이 뿌리를 내린 덕분이다.
정당정치의 핵심 기능은 국민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하면서 민심과 소통하는 일이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정당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하면 여야 정치권은 공멸의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추석 연휴를 맞아 여야는 전국 각지에서 생생한 민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필요하다면 모든 걸 허물고 새로운 당을 만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 안철수 돌풍이 우리 정당정치에 던지는 과제다. 여야는 정당민주주의를 지킬 책임을 통감(痛感)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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