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파피루스나 양피지
오늘날 종이로 만들어진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 역사 안에서 체험한 하느님과 그분 업적을 후손들에게 글과 말로 전하다 정확한 보존을 위해 기록하기 시작한 시점은 기원전 1000년께인 다윗왕 시대부터다. 이 시기는 중국 후한(後漢)시대 종이가 발명된 시점보다 1000년이나 앞선 시기다. 종이와 인쇄기술이 없던 시기에는 과연 어디에다 하느님 말씀을 기록했을까.
처음으로 하느님 말씀이 기록된 것은 돌 판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이자 민족 영웅인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께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을 받았다. "너는 내가 있는 이 산으로 올라와 거기 머물러라. 내가 백성을 가르치려고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돌 판을 너에게 주겠다"(탈출 24,12).
종이가 없던 고대 시대에 글은 파피루스에 기록됐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성경도 처음에는 대부분 파피루스나 짐승 가죽을 부드럽게 해서 만든 양피지에 기록했다. 파피루스는 지금은 나일강 상류 지역인 수단에만 있지만 고대에는 이집트에도 무성해 이집트 나일강 하류 지방 상징이기도 했다. 파피루스 줄기는 바구니, 그물, 샌들 등의 재료가 되기도 했으며, 한데 묶어서 건축용 기둥으로 쓰이기도 했다.
파피루스지(紙)는 파피루스 줄기를 얇게 갈라 표면은 옆으로, 뒷면은 세로로 늘어놓고 전체를 강하게 두들겨 나무줄기에서 나오는 끈적끈적한 진액으로 서로 붙도록 한 후 건조시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각을 옆으로 연결해 긴 두루마리로 사용했다. 이 파피루스는 기원전 4000년 말부터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일반적 필사용구로 쓰였다. 그래서 파피루스(papyrus)는 종이의 영어 표기인 페이퍼(paper)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
1947년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 사해 근처 쿰란동굴에서 사해문서가 발견됐다. 이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이곳에서 쿰란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에세네파 사람들이 율법과 예언서를 파피루스와 양피지에 필사해 남긴 것이다. 200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쿰란동굴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상태는 양호했다. 이는 고온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와 사막 열기가 파피루스 부패를 방지했기 때문이다.
파피루스에 이어 등장한 것은 짐승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다. 양피지는 파피루스와 더불어 기원전 17세기께부터 기록매체로 쓰이기는 했지만 파피루스만큼 일반적이지 않았다. 파피루스는 값싸고 풍부한 데 비해 양피지는 비싸고 재료도 한정됐으며, 무게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양피지는 파피루스 최대 결점인 약한 내구성을 해결해줬다.
성경이 양피지에 본격적으로 기록된 시점은 기원전 유다 왕국이 바빌로니아에 멸망당한 후 바빌로니아 유배를 떠나 반세기만에 자신들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때부터다.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성전을 건설한다. 이때 많은 이들이 성전에 양과 염소를 제물로 바쳤는데, 제물로 바쳐진 양과 염소는 성경 필사를 위한 양피지로 가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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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피루스에 쓰인 성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