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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견장을 떼라

namsarang 2011. 10. 19. 23:50

[배인준 칼럼]

 

진보의 견장을 떼라

 

‘우리 진보진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퇴보적인 행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진보세력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진보진영의 총단결체를 지향한다는 ‘한국진보연대’는 국적이 한국 맞는지 의심스럽다. 그만큼 헌법 파괴적이고 북한정권 추종적이다. 이 연대의 한상렬 씨는 지난해 불법 방북해 천안함 폭침을 “미국과 민족반역자 이명박의 합동 사기극”이라 하면서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했다. 국민이 신성한 투표권을 행사해 뽑은 대통령을 민족반역자라고 하니, 그가 말하는 민족이란 북이 날조한 이른바 ‘김일성 민족’을 뜻하는가.

진보연대는 시위로 반정부 반미 친북 이슈를 만드는 전문가집단이다. 2008년 봄여름엔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과 함께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도했다. 최근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와 한미 FTA 저지 운동으로 바쁘다. 진보연대 참가단체로는 민주노동당, 련방제통일추진회의, 민족문제연구소 등 30여 개가 올라 있다. 민주노총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은 참관단체로 분류돼 있다.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를 줄인 참여연대도 시위라면 진보연대와 난형난제(難兄難弟)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이라크파병반대국민행동,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대위, 한미FTA체결반대범국민행동 등에 ‘참여’했다.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있는 참여연대 건물은 광우병 시위의 지휘본부 같았다.

참여연대는 2006년 기업들의 편법상속에 대한 조사결과가 발표될 즈음 ‘새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를 열고 기업들에 초청장을 돌렸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마련된 참여연대 새 보금자리가 시위의 전략기지가 된 것이다.

참여연대 창립 주역으로 사무처장과 상임집행위원장을 지낸 박원순 씨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야권 후보로 뛰고 있다. 그는 경선 전에 이정희 민노당 대표를 만나 ‘진보민주 제(諸)정당의 연대’를 강조하며 “민노당과 함께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했고, 11일 선거대책위 출범식에서는 ‘민주진보세력의 단결’을 외쳤다.
진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역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진보라고 규정하더라도 무엇이 ‘올바른 방향’인지 전면적 합의는 불가능하다. 유럽 지식인 사이에 공산주의가 진보로 숭상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는 공산주의가 역사의 진보일 수 없음을 증명했다.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세계사는 한 사람의 자유로부터 모든 사람의 자유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좌파든 우파든 인정해야 할 최소한의 진보다.

박 후보는 민주와 진보를 하나로 묶었지만 민주는 진보이기도 하고 보수(保守)이기도 하다.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진보요, 바른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보수다.

북한에는 보수할 민주주의가 아예 없다. ‘독재자 한 사람만이 자유로운’ 세습왕조체제는 21세기 지구촌 최악의 반(反)민주요, 반진보다. 이런 김정일 집단을 옹호할 뿐 아니라 ‘남한 내 하수인’까지 된 사람들이 진보를 자처하는 것은 ‘진보 모독’이다. 박 후보가 이런 종북세력에까지 서울시정(市政) 공동운영 구상을 밝힌 것은 반진보요, 시대정신 역행이다.

‘인권’은 참여연대의 최고가치다. 그런데 국내의 소위 진보세력은 ‘보편적 인권 신장’이 진보의 핵심가치라는 데 진심으로 동의하는가. 이들 세력은 행복권은커녕 생존권마저 빼앗기고 있는 북한 내 민족의 인권을 외면한다. 박 후보도 북한에 억류된 ‘통영의 딸’ 구하기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는 몇 년째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과 민노당이 한사코 반대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대한민국을 책임진 경험까지 있음에도 종북세력의 시위에 들러리나 서왔으니 어찌 진보라 할 수 있겠는가.

인류가 도출한 민주주의 제1원칙은 ‘다수결(多數決)’이다.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보수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에서는 다수결보다 소수결(少數決)이 더 위력적일 때가 많다. 어제 일부 야당 의원들이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회의장을 점거한 것은 흔한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이렇게 민주주의에 역행하면서 민주진보세력이라고 하는 것은 정체성 사기(詐欺)다.

진보는 ‘도전과 변화’다. 우리 국민은 역동적인 도전과 변화를 통해 세계인들이 경탄하는 발전을 이뤄냈다. 국내외 시장의 개방과 개척을 통해 산업 선진국도 됐다. 이른바 진보세력은 이 같은 도전과 변화를 끊임없이 방해했고, 지금은 한미 FTA 비준·발효를 저지하고 있다. 이들의 반대에 굴복해 도전과 변화, 개발과 발전을 포기했었다면 우리는 북한과 별 차이 없는 거지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국내의 이른바 진보세력은 진보의 견장을 떼야 한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