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국내

[스크랩] 천재 성악가 김천애님의 봉선화 / 홍난파작곡

namsarang 2012. 1. 15. 15:03

 

 

 

 

천재 성악가 김천애님의 봉선화 / 홍난파작곡

 

 

현대음악의 선구자 홍난파님이

1920년 애수에 붙힌 곡에 1925년 님과

친분이 있던 김형준님이 봉선화 가사를 써서 만든

가곡 "봉선화"가 세상에 널리 불려지기 시작한 것은 

1942년 일본 무사시노[武藏野]음악학교  4학년때

김천애가 히비야공회당의 ‘전일본신인음악회’

에서 《봉선화》를 불러 큰 반향을

일으 키면서 부터였습니다.

 

이날 공연에 특별히 한복을 입고 출연한

 김천애는 연속되는 앵콜곡을 부르다가 네번째의

 앵콜곡으로 봉선화를 부르면서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무사시노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김천애가 국내에 돌아와

 음악활동을 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이 노래를 부르고

그러든 중에 레코로도 취입 보급되면서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애창곡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일제는 마침네  이 노래의 가사를

문제삼아 이 노래를 금지시켰지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전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방된

나라의 방송에서 제일 먼저 들을 수 있었던 가곡이 봉선화

였습니다.  지금 들으시는 노래는 그때 그 노래로

상태가 좋지 않지만 그대로 올렸습니다.

 

1919년 6월 11일 평안도 강서에서 출생한

김천애님은 평양정의 여자고등학교를 나와 일본 

 무사시노[武藏野]음악학교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한후

 국내에 돌아와 음악활동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창설에 힘을 기울여 1948년 성악과장으로 재직했고 그 후

숙명여대 음대 교수, 음대학장등을 역임하다가 1972년

시민회관  (지금의 세종문화 회관 터)에서 갖은

 독창회를 마지막으로 미국에 건너갔습니다.

 

미국에서 음악활동을  했지만

 반체제인사라는 이유로 국내에는 오지 못하다가

 우리나라가 민주화 된 후 1990년 국내에 잠시 돌아와

 KBS-TV 특집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얘기를 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독신으로 살던 님은 1995년 3월 30일

미국에서 세상을 뜨셨습니다.

 

 

 

홍난파님에 관한 얘기는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시면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경성방송국과 현대음악의 선구자 홍난파님

 

http://blog.daum.net/jc21th/17780255

 

 

봉    선   화

 

 

작사 김형준

작곡 홍난파

노래 김천애

 

 

1.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2.어언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3.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김천애 봉선화.mp3

출처 : 춘하추동 방송
글쓴이 : 춘하추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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