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환자를 들것에 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려고 했다. 빈틈이 없을 만큼 모여든 군중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예수님이 계신 자리 위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환자를 뉘인 들것을 달아 내렸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하고 말씀하신다. 그 병자는 벌떡 일어나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걸어서 나갔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사해 주실 권한을 땅에서 갖고 계심을 보여준다. 병의 치유 이상의 것인 죄의 용서를 우리 모두에게 주시고 그 권한을 행사하신다. 그리고 우리 마음을 단순한 병의 치유가 아닌 죄의 용서로 이끄신다.
예수님은 죄를 사해 주시는 권한을 갖고 계심을 명백하고 단호하게 나타내신다. 또 당신의 죄사함 권한을 훗날 교회 공동체에 위임하신다. 복음은 또한 우리가 그분에게 다가가려면 이웃들과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1863년 미국 미시간주 그린필드 타운쉽에서 태어난 헨리 포드는 학교 성적이 우수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계 만지기를 무척 좋아했다. 포드가 12살 때 어머니 생명이 위독해졌다. 말을 빨리 몰아 이웃 도시에서 의사를 불러왔지만 어머니는 운명했다.
포드는 "넌 기계를 좋아하니 그 재능을 잘 살려 남을 위하는 사람이 돼라"하시던 어머님 말씀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말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물건이 있었다면 어머님 목숨을 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말보다 더 빠른 것을 만들어 위급한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결심했다. 1896년 포드는 자동차를 완성하고 1903년 자동차 회사를 설립해 "남을 위해 노력하라"고 하시던 어머님 뜻을 실행했다.
인간은 혼자 태어나지만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다.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간 네 명의 사람과 말보다 빠른 물건을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결심으로 자동차를 만든 헨리 포드, 남을 구하기 위해 지하철 선로로 뛰어드는 사람들. 이들 모두 인간 공동체의 선한 구성원이다.
그럼에도 이 사회에는 자신만의 성공과 명성, 건강과 지성적ㆍ정서적 욕구를 위해 이웃을 공격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의 소유물을 움켜쥐고 사방을 의심의 눈초리로 살피며 상대를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런 자들을 위하고 도움을 주며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다가갈 수 없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유한한 몸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셨다. 인간의 자아 안으로 들어오심으로써 '멀고 가까운' 사이의 격을 없애셨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신뢰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88살 드신 한 어르신이 "인간은 자기가 원하든 원치 않든 결국 타인을 위해 인생을 살아 가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사랑에 대한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이유를 주시는 하느님은 나만의 하느님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하느님이시기에 그분께 가까이 갈수록 공동체 구성원과 형제자매에게 가까이 간다는 것이다. 자신 만을 보고 남을 돌보지 않는다면 부분만 보고 전체를 못 보는 미성숙한 신앙인이다. 자기와 다른 사람, 즉 개인과 집단, 부분과 전체, 이 부분과 저 부분의 유기적 연관과 상호작용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공동체의 성숙한 구성원이 된다.
내어줌이란 모든 것을 '얻음'이다. 이에 관해 복음은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목숨을 얻을 것이다"고 전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는 하느님을 외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수님 가르침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오히려 행동으로 얼마나 실행하였나에 따라 이웃을 통해 하느님께 가까이 이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현세적 삶은 한시적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축복받은 이들을 위해 '영원한 삶'을 마련하신다. 우리들은 예수라는 한그루 생명나무에서 피어난 잎들이다. 각자는 조금 다르지만 전체로는 같은 모양이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이상과 목표는 그분이어야 한다. 우리 마음의 첫째 자리에 모셔야 할 분도 주님이시다.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동반자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지상에서 천국을 미리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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