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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원더걸스가 실패한 미국에서 싸이가 성공한 까닭

namsarang 2012. 9. 27. 16:52

[한현우의 팝 컬처]

 

비와 원더걸스가 실패한 미국에서 싸이가 성공한 까닭

 

  • 한현우 기획취재부 차장
  • 입력 : 2012.09.26 23:31

    눈물겨운 노력에도 비 공연 반응 미지근 원더걸스 빌보드 76위
    하지만 거기서 그쳐…'울퉁불퉁 사나이' 싸이 자신만의 음악 개척한
    뮤지션으로서 대박K-팝 열풍은 이제부터

    한현우
    2006년 1월 뉴욕타임스 문화 섹션 1면을 한국 가수 비가 도배했을 때, 나는 뉴욕에서 연수 중이었다. 그날 아침 신문을 펼쳐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창간 160주년을 넘긴 그 신문의 문화면 프런트가 어떤 지면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비의 인기가 그 정도인가 어리둥절했었다.

    하지만 기사를 읽고 난 뒤엔 좀 의아했다. 비가 누구이고 그를 키운 박진영은 뭐라고 했는지 소개하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는 미국에서 처음 성공한 동양의 팝스타가 되고 싶어한다'고 신문은 썼다. '될 사람'이 아니라 '되고 싶은 사람'을 쓴 셈이었다.

    비의 음악이 '미국 R&B보다 감각적이고 섬세하다'고 썼지만, 기자의 평가가 아니라 박진영의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박진영이 비를 미국에 성공적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만은 역력했다.

    이어 한국의 모든 언론은 '뉴욕타임스 대서특필'을 대서특필했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월드스타가 탄생할 것 같았다. 뉴욕 한인타운 식당가에서 비의 공연 초대권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사실만 빼면 말이다.

    그리고 며칠 뒤 공연이 열렸다. 한국 신문들은 '뉴욕이 비에 흠뻑 젖었다'며 극찬했다. 그런데 '믿었던' 뉴욕타임스의 공연 리뷰는 전혀 딴판이었다. 칭찬이라고는 거의 없는 기사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구절은 'He's a fine dancer and a passable singer'라는 문장이었다. '뛰어난 댄서이자 괜찮은 가수'라고 읽으면 그만이었지만, 'passable'이란 단어가 생선가시처럼 걸렸다. 공연 리뷰에서 그런 표현을 본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기사를 당시 수업을 듣고 있던 뉴욕대 교수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그 단어를 쓴 것은 심한 혹평을 점잖게 하고 싶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박진영은 이후 원더걸스라는 카드를 들고 미국을 다시 한 번 공략했다. 이번에도 박진영의 노력은 눈물겨워서, 원더걸스의 음반을 여자아동복 매장 800여곳에서 단돈 1달러에 파는 전략으로 '노바디'를 빌보드 차트 76위에 올려놓았다.

    그게 전부였다. 그 뒤로 박진영이 미국에서 보내온 소식은 뉴욕에 고깃집을 열었다는 뉴스 정도였다. 그리고 한참 뒤 'K-팝 열풍'이 불어 소녀시대가 미국과 유럽을 휩쓸었다는 소식에서도 '애국심'이란 조미료 맛이 강하게 났다.

    그런데 싸이는 달랐다. 유튜브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부터 "이번엔 진짜다"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것도 미국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거나 음악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올해 서른다섯 살의 유부남, 잘생기지도 않았고 복근도 없는 쌍둥이 아빠가 불과 두 달 만에 '월드 스타'가 된 것이다.

    아직 미국 음악평론가들은 싸이를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한 곡만 히트시키고 사라진 사람)'로 몰아가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싸이는 이미 빌보드차트 11위에 올라있다. "한 번만 올라도 삼대(三代)가 먹고 산다"는 빌보드 40위 내에서도 상위권인 것이다. 지금 추세로 보면 1위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싸이가 미국 진출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음악을 만들고 뮤직비디오를 찍어 유튜브에 올린 것은 모두 '한국 팬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말춤을 추며 그에게 다가오고 있다.

    싸이의 성공 비결로 여러 가지를 꼽는다. 재미있고 신나는 음악과 춤, 그리고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의 힘 등이다. 미국에 가자마자 'Dress classy, dance cheesy(옷은 제대로, 춤은 멋대로)'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낸 그의 영어 실력도 한몫 단단히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이 간과되고 있다.

    그것은 싸이가 이전의 '한류 가수'들과는 달리, 연예인이기 이전에 자신만의 음악을 개척해 온 뮤지션이라는 점이다. 그는 기획자가 원하는 음악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해왔다. '강남스타일'에 가려진 노래 '청개구리'에 그런 마음이 잘 담겨있다.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너 그러다 뭐 될래/ 살면서 가장 많이 하고픈 말/ 내가 알아서 할게/…/그래 나 청개구리/ 그 누가 제아무리 뭐라 해도/ 나는 나야."

    그간 우리는 공장 제품 같은 음악들에 한류라는 이름을 붙이고, 음악을 수출 효자 종목으로 취급해왔다. 한국의 유능한 음악기획자들은 연예인이 되고픈 10대들을 조련해 일단 가수로 데뷔시킨 뒤,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내보내 연기력과 말솜씨를 테스트했다. 가수로서 인기가 떨어지면 바로 전업(轉業)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둔갑했다.

    미국 메이저 음악계를 노크한 한국 연예인들은 많았다. 싸이는 미국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와 달라고 아우성이다. 이제야 비로소 한국의 대중음악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진짜 'K-팝 열풍'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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