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가나안 첫 정착지, 요셉이 묻힌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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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나블루스'라 불리는 스켐의 사마리아인들이 속죄절에 양들을 죽어 번제물로 바치고 있다. 【CNS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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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단어다. 여행을 떠나면 일상을 벗어난다. 그리고 우리를 수 천 년 전의 사람들과 그들의 삶으로 인도한다. 그러면 길 위의 돌멩이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평화신문 지면을 빌려 세 번째로 여행할 곳은 신성한 도시 '스켐'이다.
사마리아 지방에 위치한 스켐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65㎞ 떨어져 있고 나자렛으로 가는 길에 있다. 스켐은 '목덜미'라는 뜻인데, 그리짐 산과 에발 산을 양쪽 어깨에 메고 있는 듯한 모양새 때문인 것 같다.
스켐은 이집트에서 시리아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통하고 팔레스티나를 관통하는 곳으로 교통의 중심지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집트에서 요르단과 시리아를 가려면 예루살렘을 거쳐 스켐까지 외길이고 스켐에서 갈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켐은 예로부터 대상들이 모여드는 요지였다.
스켐은 연평균 강우량이 적당해서 고대로부터 농사짓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평지를 둘러싼 산비탈에는 포도, 무화과나무, 올리브나무가 경작됐고, 목축에도 좋은 풀밭이 많이 있었다(창세 37,12-13).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스켐에는 기원전 4000년께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스켐의 넓은 성전과 큰 성문들은 기원전 18~17세기께 힉소스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그러다 스켐은 기원전 1550년께 이집트인들에 의해 파괴됐다. 이집트 점령 이후 도시의 규모는 축소됐다.
스켐은 아브라함부터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여러 성경 이야기의 배경이 된다. 성경에서 스켐의 역사는 아브라함과 함께 시작한다. 스켐은 가장 먼저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에 오는 장면에 등장한다. "아브람은 그 땅을 가로질러 스켐의 성소 곧 모레의 참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이 살고 있었다"(창세 12,6). 스켐의 성소에 나타나신 주님께서 아브람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아브람은 주님을 위해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창세 12,7 참조).
야곱은 외삼촌 라반을 떠나 형 에사오와 헤어져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스켐에 정착했고(창세 33,18), 야곱의 딸 디나가 스켐의 족장 하모르의 아들에게 겁탈당했을 때 오빠 시메온과 레위가 스켐에 들어가 남자들을 모조리 죽였다(창세 34장 참조).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차지한 뒤 요셉의 유골을 스켐에 안치했다(여호 24,32). 이후 스켐은 요셉의 맏아들인 므나쎄 지파의 땅이 됐다(여호 17,1-7).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열두 지파를 스켐에서 소집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과 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러내니, 그들이 하느님 앞에 나와 섰다"(여호수아 24,1). 이후 스켐은 12지파의 종교적 중심지로 억울한 죄인들이 피신할 수 있는 성읍 중 하나로 뽑혔다(여호 20,7).
솔로몬 왕이 사망한 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기원전 931년) 북 이스라엘 왕권을 장악한 느봇의 아들 예로보암은 스켐을 첫 번째 수도로 삼았다(1열왕 12,25). 그러다 그는 곧 그의 가족이 거주하는 티르차에 새 수도를 세운다(1열왕 14, 17).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스켐의 주민들을 잡아갔다. 그리고는 이방인들을 이곳에 이주시켰다. 이후 남쪽 유다인들은 스켐이 속한 사마리아를 '이방인의 땅'으로 취급했다.
기원전 4세기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요충지인 스켐을 군사 기지로 만들었다. 이후 기원전 123년께 유다의 새 왕조인 하스모네아 왕조의 요한 히르카노스 1세에 의해 스켐은 완전히 파괴됐다. 기원전 72년 로마는 스켐을 재건해 '플라비아 네아폴리스'라고 불렀고, 아랍인들은 자신들의 발음에 따라 지금까지 '나블루스'라고 한다.
스켐은 오늘날 유다인에게 예루살렘처럼 거룩하게 여기는 중요한 도시이다. 1948년부터 요르단에 속했던 스켐은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 땅이 됐다. 스켐은 오늘날 성지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성경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교구장 수석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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