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Q. 루카복음 16장에 불의한 집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정직하다기보다 잔머리꾼인 집사를 주님께서 칭찬하신다면 우리도 그렇게 살라고 하시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복음을 묵상하다가 마음이 불편해서 문의드립니다.
A. 루카복음 16장에는 주인행세를 하다가 쫓겨나게 된 집사가 빚진 사람들의 빚을 자기 마음대로 줄여주고 탕감해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주인에게 이중으로 잘못을 저지른 집사인데 칭찬을 듣는다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집사를 본받으라고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주님이 강조하신 것은 집사의 영리함과 융통성을 본받으라고 우회적으로 말씀하신 것이지요. 아마도 당시 사람들이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어서 속이 많이 상해서 하신 말씀인 듯합니다.
우리는 앞뒤가 꽉 막힌 사람들을 일컬어 '벽창호'라고 부릅니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들이란 뜻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몇 가지 특징을 갖습니다. 우선 지나치게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삽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혹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는 규칙이 필요합니다. 만약 규칙 없이 산다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규칙이 너무 엄격한 경우 그래서 규제가 심할 때는 쥐 잡는다고 놓은 덫이 고양이를 잡듯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그런 엄격한 규칙을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할 듯이 눈을 부라리면서 항변합니다. 이들이 왜 규칙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자신이 그렇게 무거운 규칙을 지키고 사는 것에 대해 자가당착적 자신감, 자만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엄한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전혀 근거 없는 자기평가로 인해 그런 덜떨어진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냥 자만심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잔소리하기를 마다치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갈등이 심한 편입니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언급해서 상대방 속을 건드리고는 상대방이 반격하면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억울해합니다. 구제불능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것인데 알아듣지 못한다고 힐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당하는 상대방들이 입도 뻥끗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처럼 융통성이 없는 사람들은 대인관계가 그리 좋지 않고 그런 연유로 인생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집사처럼 융통성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싫은 소리라도 일단 들어보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벽창호인지 숙고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오만한 자신의 자세를 낮추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대개 벽창호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꼴통이라거나 재수 없는 사람이라는 혹평을 듣는 일이 많습니다. 그냥 혼자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은근히 잘난 척을 하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가 큰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의 상처와 병적 콤플렉스를 누가 건드릴까 두려워서 자기 마음을 자기도 안 보려고 규칙에 집착하고 자기 안의 열등감을 해소하려고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인 다른 사람들을 우습게 보고 무시하는 덜떨어진 행위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방지하려면 마음의 문을 열어 자신의 문제를 솔직히 드러내고 자신보다 수준 낮게 본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에 바깥 공기가 들어오고 융통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우같은 며느리는 데리고 살아도 곰같은 며느리는 데리고 살기 어렵다고 하는데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들처럼 살 자신이 없으면 짝퉁 성인 노릇을 그만하고 집사처럼 영리하고 융통성 있는 삶이라도 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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