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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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보여주는 복음서 대목은 어디일까요? 사람들이 물어올 때마다 성경 전체를 찾아보기 어려워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답 : 루카복음 5장 17-26절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이 대목은 주님의 삶 전체를 요약하듯이 상황이 묘사되고 전개됩니다. 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이 어떤 분이시냐 하는 주님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입니다.
교회 안의 지나치게 보수적인 사람들은 주님을 심판자처럼 여기고 도덕적 하자에 대해 엄격한 재판을 하시는 분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리사이·율법학자들과의 논쟁을 통해 당신은 죄에 대하여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병든 사람에 대한 치유자임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율법과 죄라는 이중굴레로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핍박을 일삼던 병적인 재판관들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비판하시고 그들의 무능함과 기만성을 드러내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것과 어느 편이 쉽겠냐?” 하신 말씀은 바리사이들의 약점과 허점을 아주 적나라하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너희가 할 줄 아는 게 뭐냐? 기껏해야 사람들이 율법을 지켰느냐 지키지 않았느냐 구시렁거리기나 하지 사람들에게 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가 과연 사람들에게 유익한 존재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중에 화근이 될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바리사이들에게 근거 없는 정신적 속박을 당하고 있음을 아시고 그들의 마음을 바리사이들이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가진 병이 병적인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지하시고 그런 병적인 바이러스를 사람들에게 퍼뜨린 원인자가 바로 바리사이들이란 것을 명확하게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과격할 정도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바리사이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율법을 조목조목 지키면서 은근한 자부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자의 자리에 있고 싶어하는 허영심을 깨뜨려서 더 깊은 공부를 하게 하려는 직설적인 화술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을 미워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만족에 빠져서 자기 기만, 타인 기만이라는 병적인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에 대하여 쓴소리를 통해 그런 상태를 탈피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이 대목은 또한 공동기도의 중요함에 대하여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중풍 들린 사람을 사람들이 주님께 데려왔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대목인데 중풍 병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오게 되었다는 것은 바로 공동기도의 중요함에 대한 비유적 표현입니다. 우리가 교회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해주는 대목입니다.
요약하자면 신앙생활이란 치유자이신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혹간 죄를 지어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고 하는 분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죄를 지었는데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고 시비를 거는 분들은 주님께서 치유자이셨다는 사실을 깊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병적인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중풍 병자처럼 될 수도 있고 바리사이들처럼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주님으로부터 망신을 당하는 꼴을 겪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어야 합니다. 중풍 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온 사람들의 의리도 칭찬할 만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런 선행을 베풀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한 것은 바로 중풍 병자의 마음 씀씀이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간혹 믿음만이 중요하다고 강변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분들은 아무리 믿음이 강해도 인간관계가 좋지 않으면 건강하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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