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족과 전투에서 첫 승리 거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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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렙 바위에서 샘이 솟아 이스라엘 백성의 갈증을 해소해준 르피딤 산 꼭대기에는 '야훼 니씨' 제단의 흔적이 남아 있다. 리길재 기자 |
'평원'이란 뜻을 지닌 르피딤은 신 광야와 시나이 광야 사이에 있는 골짜기다. 이곳은 아주 기름진 평원으로 사람이 많이 살았던 흔적이 보이는 지역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는 주님의 분부대로 신 광야를 떠나 차츰차츰 자리를 옮겨 갔다. 그들은 르피딤에 진을 쳤는데,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다"(탈출 17,1).
르피딤도 역시 광야 지대이지만 특히 이곳은 양쪽으로 험한 바위산을 거느리고 좁은 계곡으로 길게 뻗어 있어 다른 곳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지니고 있다. 또 보기 드물게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큰 오아시스를 품고 있는 곳이다. 홍해를 건너 시나이산으로 오는 도중에 도로변을 따라 4㎞ 정도에 걸쳐 대추야자 나무와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여러 곳에 물이 있는 꽤 큰 마을이다. 삭막한 광야의 계곡 한 모퉁이에 이런 오아시스가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성경에 따르면 르피딤은 두 개의 커다란 사건과 관련이 있다. 우선 모세가 하느님의 명령대로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쳐 샘을 솟게 해 백성들의 갈증을 풀어준 사건이 대표적이다. 르피딤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곳에 마실 물이 없음을 확인하고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우리가 마실 물을 내놓으라",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 보다 못한 모세가 하느님께 하소연했다. "이 백성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원로들 가운데 몇 사람을 데리고 백성보다 앞서 나아가거라. 나일 강을 친 너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거라.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탈출 17,5-6). 모세는 하느님의 명령대로 호렙 바위 위에서 반석을 내리쳤다. 그러자 바위에서 샘이 솟아 백성들의 갈증을 풀어줬다.
르피딤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투고, 그들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했다고 해서 그곳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 부르게 되었다(탈출17,7). '마싸'는 '시험하다'라는 뜻이며, '므리바'는 '다툰다'라는 뜻이다.
르피딤 지역에서 또 하나 중요한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온 이후 광야 생활 최초로 이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사건이다.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우러 나갔을 때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만 있으면 이기는 싸움이었다. 아말렉의 군사는 이스라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물리쳐 승리했다. "모세의 손이 무거워지자, 그들은 돌을 가져다 그의 발 아래 놓고 그를 그 위에 앉혔다. 그런 다음 아론과 후르가 한 사람은 이쪽에서, 다른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두 손을 받쳐 주니, 그의 손이 해가 질 때까지 처지지 않았다"(탈출 17,12).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믿었다. 모세가 이곳에 아말렉과 싸워 승리한 기념으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야훼 니씨'라 하였다(탈출 17,15).
한때 모세가 손을 들고 서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모세 기념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지금은 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다. 지금은 그 흔적으로 주님의 기적을 확인하지만, 르피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존재와 능력을 체험한 소중한 장소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