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이런일 저런일

어느 시어머니의 고백

namsarang 2015. 6. 26. 10:37

작성자goodman|작성시간14.11.16


어느 시어머니의 고백




    얼마전 뉴스를 듣는데
    90살 노부부가 치매에 걸려서
    동반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들었습니다.
    지금 내 나이보다 30여년을 더 사시면서

    얼마나 힘들고 고달펐겠는가 싶더군요.
    저는 얼마전까지는 그래도
    하루하루 사는 기대를 가졌었답니다...
    차마 제 주위에 아는 사람들에겐
    부끄러워 말할 수 없었던 한 달 여 동안의
    내 가슴속 멍을 털어 보고자
    이렇게 어렵게 글을 적어 봅니다.



    내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고등학교때
    남편을 잃고 혼자 몸으로 대학 보내고
    집장만해서 장가를 보냈죠.
    이만큼이 부모로써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아들놈 장가 보내 놓았으니
    효도 한 번 받아보자 싶은 욕심에
    아들놈 내외를 끼고 살고 있습니다.



    집 장만 따로해 줄 형편이 안되어
    내 명의로 있던 집을
    아들명의로 바꿔 놓고는 함께 살고 있지요.
    남편 먼저 세상 떠난 후 아들 대학까지
    공부 가르치느라 공장일이며 때밀이며

    파출부며.안해 본 일이 없이 고생을

    해서인지 몸이 성한데가 없어도

    어쩐지 아들 내외한테는
    쉽게 어디 아프다란 말하기가
    왜그렇게 눈치가 보이는지...





    무릎관절이 안좋아서 매번 며느리한테
    병원비 타서 병원 다니는 내 신세가
    왜 그렇게 한스럽던지...
    참, 모든 시어머니들이 이렇게
    며느리랑 함께 살면서 눈치 보면서
    알게 모르게 병들고 있을겁니다.
    어디 식당에 일이라도 다니고 싶어도
    다리가 아파서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아들한테 짐만 된거 같은 생각마져 듭니다.




    며느리가 용돈을 처음엔 꼬박 잘 챙겨

    주더니 이년전 다리가 아파서 병원을

    다니면서부터는 제 병원비 탓인지

    용돈도 뜸해지더라구요,
    그래도 아따금씩 아들놈이 지 용돈 쪼개서
    꼬깃꼬깃주는 그 만원짜리 서너장에
    내가 아들놈은 잘 키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래며 살았지요.



    그런데 이따금씩 만나는
    초등학교 친구들한테 밥한끼 사주지

    못하고 얻어만 먹는게 너무 미안해서
    용돈을 조금씩 모았는데
    간혹 며느리한테 미안해서
    병원비 달라 소리 못할때마다

    그 모아둔 용돈 다 들어쓰고 또

    빈털털이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친구들한테 맘먹고
    밥한번 사야겠단 생각에
    아들놈 퇴근 길목을 지키고 서있다가
    "야야, 용돈 좀 다오.
    엄마 친구들한테 매번 밥 얻어 먹기 미안해서
    조만간 밥 한끼 꼭 좀 사야 안되겠나."
    어렵게 말을 꺼냈더니만 아들놈 하는말이
    "엄마, 집사람한테 이야기 할께요."
    그러곤 들어가지 뭐예요.



    내가 괜히 말을 꺼냈는가 싶기도 하고
    며느리 눈치 볼 일이 또 까마득 했어요.
    그렇게 아들놈한테 용돈 이야길 한지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답이 없길래
    직접 며느리한테
    "아가야, 내 용돈 쫌만 다오.
    친구들한테 하도 밥을 얻어 먹었더니
    미안해서 밥 한끼 살라한다." 했더니
    며느리 아무 표정도 없이
    4만원을 챙겨 들고 와서는 내밀더라구요.



    4만원가지고는 15명이나 되는

    모임친구들 5000원짜리 국밥 한그릇도

    못먹이겠다 싶어서
    다음날 또 며느리를 붙들고 용돈좀

    다오 했더니 2만원을 챙겨 주었어요.
    그렇게 세차례나 용돈 이야길 꺼내서
    받은 돈이 채 10만원이 안되었지요.




    그래서 어차피 내가 밥사긴 틀렸다

    싶어서 괜한짓을 했나 후회도 되고
    가만 생각해 보니깐
    괜히 돈을 달랬나 싶어지길래
    며느리한테 세번에 거쳐 받은

    10만원 안되는 돈을 들고 며느리 방으로

    가서 화장대 서랍에 돈을 넣어 뒀지요.


    그런데 그 서랍속에
    며느리 가계부가 있더라구요.
    난 그냥 우리 며느리가

    알뜰살뜰 가계부도 다쓰는구나 싶은

    생각에 가계부를 열어 읽어

    나가기 시작을 했는데.



    그 순간이 지금까지
    평생 후회할 순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글쎄,
    9월14일 왠수 40,000원

    9월15일 왠수 20,000원
    9월17일 또 왠수 20,000원
    처음엔 이 글이 뭔가 한참을 들여다 봤는데
    날짜며 금액이 내가 며느리한테
    용돈을 달래서 받아 간 걸 적어 둔 거였어요.


    나는 그 순간 하늘이 노랗고
    숨이 탁 막혀서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남편 생각에..
    아니, 인생 헛살았구나

    싶은 생각에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어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들고 들어갔던

    돈을 다시 집어들고 나와서
    이걸 아들한테 이야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가 생각을 했는데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이야길 하면
    난 다시는 며느리랑 아들 얼굴을 보고
    함께 한집에서 살 수가 없을거 같았으니까요.
    그런 생각에 더 비참해지더라구요
    그렇게 한달 전 내 가슴속에
    멍이 들어 한10년은 더 늙은 듯 하네요.

    얼마 전 들은 그 90대 노부부의
    기사를 듣고 나니깐
    그 노부부의 심정이 이해가 가더군요.
    아마도 자식들 짐 덜어 주고자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어요.
    며느리랑 아들한테 평생의
    짐이 된 단 생각이 들때면
    가끔 더 추해지기 전에 죽어야 할텐데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도 이제 곧 손자녀석도 태어 날텐데
    자꾸 그때 그 며느리의 가계부

    한마디 때문에 이렇게 멍들어서

    더 늙어가면 안되지 싶은생각에
    오늘 수십번도 더 마음을 달래며 고치며
    그 가계부의 왠수란 두글자를

    잊어보려 합니다.



    차라리 우리 며느리가
    이 방송을 들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젠 자식 뒷바라지에 다 늙고

    몸 어디 성한데도 없고 일거리도 없이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지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과 인지 모르시죠?
    이 세상 부모로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자식한테 받는 소외감은
    사는 의미 뿐만 아니라
    지금껏 살아 왔던 의미까지도

    무의미해진다라고 말입니다.


    이제라도 이렇게 방송을 통해서
    가슴 아팠던 심정을 털어 놓았느니

    며느리 눈치 안보고 곧 태어날
    손주녀석만 생각하렵니다.
    요즘은 내가 혹시 치매에
    걸리지나 않을까 싶은 두려움에
    책도 읽고 인터넷 고스톱도 치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출처: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