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모르는 사실입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 충격으로 멍~한 상태가 될 겁니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는 썩어 있다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항일운동이 박승환(朴承煥,남로당계 여운형의 연락책)과 관련되어 있어서 우익도 외면하고 좌익도 외면했던 묘한 사연을 아시는가?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의 비서 송남헌은 그의 저서 "해방3년사" 26쪽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해방3년사, 1990년 까치사 간행)


송남헌은 좌파 성향의 인물이라 5.16후 2년간 옥살이를 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싫어함.
그러나 그는 양심상 진실을 기록하였던 것이다.
 

 

송남헌의 기록을 보자.(해방3년사, 26쪽 중간 부분)


"관동군의 주력이 남방 전선으로 이동한 헛점을 이용하여 만주에 산재한 독립군과의 결합과 인근 주재 부대의 통합으로 약 1개사단 병력을 편성할수 있다고 판단하여 군사 편성을 모의하고 1945년 8월29일 국치일을 기하여 국내 진공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의외로 일본의 항복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어 만주에서의 박승환을 중심으로 한 조선 출신 군인 국내 진공 계획은 유감스럽게도 좌절되고 말았다.

 

이 국내 진공에 관한 비밀 거사에 참여한 바가 있었던 조선 출신 군인 가운데는 박정희 전 대통령도 있으며 그는 북경에 있던 광복군 3지대 (김학규 부대)에 편입하여 1946년 귀국하였고, 8.15 해방 즉시 귀국하여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한

장교도 있었다."

  

아래는 송남헌의 "해방3년사" 26쪽에 나오는 기록 밑에서 3번째 줄에 박정희 대통령 이름이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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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의 비서 송남헌이 기록한 것인데, 허튼 것을 기록하겠는가? 
 

이것 뿐만이 아니고, 박정희 대통령의 항일 정신을 나타내는 기록은 많다. 

 

문경 보통학교 박정희 선생님이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 이유  

조인스 매거진 뉴스위크
929호 (2010.05.12) [24] 


70년, 64년 만에 입을 연 두 증언자


예기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박정희의 문경초등학교 시절 여제자 이순희(81·한국극빈아동선도회장)씨가 그(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입학 직전에 벌어졌던 ‘교무실 린치 사건’을 공개했다.


70년 만의 이 증언은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제기되지 않았다.

더없이 생생한 그의 말을 종합하면, 교사 박정희는 학교 재직 기간 내내 반일사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불령선인(不逞鮮人, 일제에 비협조적인 인물)으로 찍혀 있었고, 이를 조사하려고 나온 시학관(視學官, 장학관) 일행이 학교를 방문하던 날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 일본인 교사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했다.


1939년 10월께 벌어진 상황이다. 피투성이가 된 채 “복수할 거야!”라고 외치며 학교를 떠났던 박정희는 그 길로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했으며...
 

이하생략 

 

박정희 선생님의 항일 행적

문경 보통학교 교사시절 제자들의 증언 자료

 
문경공립보통학교에서 3년간(1937-1940) 교사로 근무
이영태씨의 증언입니다.  

"수업 시간에 우리나라의 태극기와 역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음악시간에는 황성옛터,심청의 노래 등을 가르쳐 주시고 기타도 쳐 주셨습니다.

 
평소 '전세계를 얻는다 할지라도 민족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망하는 길밖에 없다.우리는 남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쌓아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알기 위해서 앞으로 노력해야 한다.'라고 학생들의 분발을 촉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국이 없는 서러움 때문인지 일본인 교사들과는 자주 싸우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하루는 수석교사였던 일본인 야나자와와 말다툼 끝에 그가 ´조선놈´이라고 하자 의자를 집어 던진 일도 있었습니다.

  

주영배씨의 증언입니다.

 

"39년, 내가 보통학교 5학년일 때 조선어를 가르치며 박선생님께서는 "이글을 잘 배워야 한다"라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박선생님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가정실습때는 문경에서 12키로나 떨어진 산골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셨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는 그 뒷모습이 산록으로 숨어들 때는 울고 싶도록 감사했습니다."

 

 황광실씨의 증언입니다.

 
"박선생님이 우리학교에 오셨을 때 나는 6학년 반장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조선어를 가르치셨습니다. 역사 시조도 가르치고 학생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하여 위인전을 많이 읽도록 하셨습니다.

 
박선생님이 일제 치하에서 우리글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신 것은 분명합니다. 학생 한사람을 복도에 세워 놓고 일본인 교장이나 교사가 오지 않나 망을 보게 했습니다.

 

그때 한 남학생이 천황의 사진에다 장난을 하고 교무실로 불려가 혼이 난 일이 있었습니다. 천황의 눈을 연필로 까맣게 지우는 따위의 행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우리들에게 그런 생각을 갖게 한 것은 박선생님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이상 

 

보기 드문 항일운동가를 친일파로 몰아부치고 있는 사회가 현재 한국입니다.

 

광복군 사령관 지청천 장군은 일본군 장교를 5년간 했는데, 친일파 기준을 무엇으로 정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