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하느님이 죽었다!
▲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
‘신은 죽었다!’
2000년 동안 교회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침내 숨을 거두셨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인간 예수님의 죽음은 곧 하느님의 죽음입니다. 교회에 모인 사람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이 죽음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냅니다.
1. 고통 속에 헐떡거리다 숨이 잦아들어가는 소리
십자가 위에서 꽤 오랫동안 극심한 고통 속에서 헐떡이던 숨소리도 이제는 많이 잦아들었습니다. 이제 곧 숨을 거두시려나 봅니다. 아무리 봐도 정치범이 아닌데 십자가의 사형수가 된 예수님이 어제 저녁 식사 후 붙들려 와서, 한밤중에 로마제국의 총독으로부터 사형 언도를 받고 이렇게 삽시간에 사형이 집행되고 있습니다. 아무도 변호해 주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말입니다.
더구나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군인들이 예수님께 침을 뱉기도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던 길에서 여러 번 쓰러지셨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우연히 같이 십자가를 거들어 지고 오기도 하였습니다. 못이 손바닥에 박혔는지, 손목에 박혔는지 모르지만 얼마나 아픕니까? 사람을 한 자리에 오랫동안 가만히 세워둬도 힘들 텐데, 못을 박아 십자가에 몸을 고정하고 죽기를 기다리니 얼마나 잔혹한 사형 방법입니까?
이제는 무지막지한 고통 속에 울부짖던 울음소리도 사라지고, 헐떡이던 숨소리도 잦아들고 있습니다. 숨을 거둘 때가 됐습니다. 하느님이 죽어가는 장면입니다.
2.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왜 정치적 활동도 하지 않은 예수께서 이런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자살은 아니지 않은가? 과연 하느님을 모독하였는가? 모독한 적은 없다. 왜냐하면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니까? 그럼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많은 환자를 고쳐 주시고 마귀를 내쫓으시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빵의 기적을 이루시고 죽은 사람도 살리신 예수님이 아니신가? 그분이 하신 활동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 그대로 하신 것이 아닌가? ‘성령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셨다.’
어찌 된 영문인지 활동 초기부터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자꾸 죽이려고 합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화를 위해 전적으로 투신한 결과로 이런 몹쓸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와 교회에서 자발적인 섬김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지만 흔히 되돌아오는 결과는 때로는 혹독한 시련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 스승님께서 먼저 이런 험한 꼴을 당하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아담과 하와가 그 원죄의 나무 아래에서 ‘하느님처럼 되려는 유혹’에 빠져 하느님과 함께 살던 그 행복한 낙원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셔서 죽음까지 겪으셨기에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이방인을 통해서도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하느님이 죽으시면서 완전히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이 하느님 자녀가 되고,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는 은총의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이 겸손은 인간을 구원하는 겸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겸손하려고 할 때, 고통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자의 이 겸손은 인간을 구원하는 도구가 됩니다.
4. 오늘도
오늘도 세상 도처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많은 사람이 극도의 고통을 겪으면서 죽어갑니다.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갑니다. 의로운 사람들의 죽음도 이어집니다. 하느님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하느님은 그들의 운명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최선의 방법, 완전한 방법을 사용하셔서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매일 제대 위에서 예수님께서는 피 흘림 없는 십자가의 제사를 바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현장에서 함께 죽어가면서 십자가 제사를 바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구세주 예수님을 믿습니다. 미사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몸을 받아 모시고 주님과 하나가 된 우리도 그 십자가 죽음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스승님을 뒤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르심을 듣고 응답하는 우리는 이 하느님 죽음에 동참하도록 사명을 받았습니다.
'창(窓) > 웃으면 좋아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How to Put on a Bra (0) | 2016.03.24 |
---|---|
글쎄 건들지 말랬잔아 (0) | 2016.03.23 |
술주정 백세인생 (0) | 2016.03.20 |
엉덩이 메뉴 (0) | 2016.03.18 |
강남스타일 (0) | 2016.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