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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법사스님 감동이야기...

namsarang 2016. 4. 21. 10:15

양산 통도사 법사스님 감동이야기...  

 
 


 
조선의 정조대왕 시절에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훌륭한 법사 스님이 계셨다.

그 법사 스님은 아주 핏덩이 일때 그 추운 겨울에 양산 통도사의 일주문 앞에 보에 쌓여 놓여 있었는데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스님 한 분이 통도사로 데리고 와 절에서 기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통도사 일주문 앞에 놓이게 된 것에는 사연이 있었다.
어느날 젊은 부인이 한 사람 찾아와 주지 스님을 친견 하였는데 그 때 갓난 아이를 보듬고 왔었다.

그 젊은 보살이 주지 스님에게 말 하기를..
"스님 제가 이 절에서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공양주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엄동 설한에 우리 모자는 굶어 죽지 않으면 눈 속에 얼어 죽을 것 같으니 해동을 할 때 까지 만이라도 제가 여기서 일을 하면서 이 갓난 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그 때 주지 스님은 대중 공사(사찰에서 말하는 일종의 재판 같은 회의를 말함)를 모든 대중이 모인데서 붙혔다.

그 때의 결론은 "안 된다" 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너무 젊다는 것이었다.

사부 대중이 많은 이 사찰에 살면서 헛 소문 만들기 좋아 하는 자들로 인하여 어떤 불미스런 헛 소문이 날지를 모른다.


젊은 스님 누군가와 눈이 맞아 애를 놓았다느니 아니면 젊다 보니 앞으로 있을 어떤 스님과의 연분이 생길 수 도 있기 때문에 이 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였다.

그 때 그 보살은 통도사를 빠져 나오다가 눈이 오는데 어린 갓난 아이를 일주문 옆에 두고서 떠나 버린 것이었다.

그것을 다른 스님이 지나다 데리고 와서 키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크면서 얼마나 신통한지 스님들이 법문을 하실라 치면 늘 앞에 정좌하고 앉아서 요지부동도 않은체 듣는 즉시 외워 버리는것이었다.

그러다 나이 18 세에 훌륭한 법사 스님이 되셨다.
그 스님이 법문을 하실 때면 사방 천지에서 구름처럼 사람이 모여 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날도 그 법사 스님이 법문을 하고 계실 때 법문을 듣고 있던 어떤 노 보살님이 혼자 말로..

"대체 저 법사 스님의 어머니는 어떤 분일까?
어떤 분이 어머니 이시길래 아들을 저리도 훌륭하게 잘 키우셨을까?"

그렇게 혼자 말로 중얼 거리고 있는데 그때 옆에 앉아 있던 한 보살이 "예~ 제가 저 법사 스님의 애미 입니다."

그 단 한 마디가 순식간에 법당 안과 도량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쫙 퍼진 것이었다.

 

 

마침내는 법사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는 그 사이에 듣게 되었다.

법문을 마치고 나온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라는 사람 보고 좀 기다리라고 하고는 모든 사부대중을 불러 놓고 의논을 하였다.


"지금 저기에는 내 어머니라는 보살이 와 있는데 모든 스님들의 생각은 어떠 하신지요? 제가 만나뵈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모두가 하나 같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아니 그 엄동 설한에 눈까지 오는데 죽으라고 일주문 앞에 두고 갈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훌륭한 법사 스님이 되시니까

내 아들이네 하고 자랑을 하는것이 어디 애미된 도리 입니까?

그런 사람 이라면 불러서 혼을 내 주고 두 번 다시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중공사가 그렇게 결정이 나자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 되는 사람을 들어 오게 하여서 마주 앉아서 하는 말..

"정말 그대가 내 어머니가 맞소?"
"예~ 제가 예전에 일주문에다 두고 갔었지요."

그러자 법사 스님 "됐오.. 그러면..

이제 두 번 다시는 나를 아들이라고도 하지 말고 또 그대가 법사 스님의 엄니 이네. 하는 말도 마시오. 죽으라고 버리고 갈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내 아들이네~ 하는 것은 무슨 심보요.

그러니 앞으로는 내 법문을 들으러 오는 것은 좋으나 절대로 어디 가서 법사 스님이 내 아들이란 소리는 마시고 두 번 다시는 나를 아는채도 마시구려..

그러면서 어머니를 돌려 보냈던 겁니다.

 

 그 무렵
정조 대왕의 귀에도 양산의 통도사에는 아주 훌륭한 법사 스님이 있는데 그 스님이 법문을 할 때면 사람들이 구름 처럼 모여 든다는 소문이 들린 것이다.

그 소문을 듣고 있던 정조 대왕이
그럼 그토록 훌륭한 법사스님을 낳으신 어머니가 있을 테니 양산으로 내려가서 그 어머니를 모시고 오도록 하시요.

어명을 받고 양산 통도사로 내려온 신하들이 다시 정조대왕 에게 이르기를.. 그 어머니에 대한 자초 지종을 모두 고하자

정조대왕이 통도사의 법사 스님에게 편지 한통을 전했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을 좋아 한다 사랑 한다 하여도 그 어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님 만큼이나 하리오.

내가 듣기로는 그 추운 겨울에 스님을 버렸다 하나 그것은 그렇지가 않구려.

둘이 같이 다니면 얼어 죽고 배 고파 죽게 생겻으니 파리의 목숨도 귀하게 여기는 스님들은 자식을 여기 두고 가도 분명 살려 주었으면 주었지 어찌 산 생명을 죽도록 내 버려 두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살릴려고 두고 간 것이지 절대로 죽으라고 버리고 간 것이 아닙니다.

이 편지를 받아든 법사 스님..

갑자기 오늘이 아니면 그 어머니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수소문 하여서 길을 떠나 찾아 다니기 시작을 했었다.

그러다 해가 거의 다 질 무렵, 한 마을에 이르러 한채 뿐인 집에 들어가서 묻기를..

혹시 이러 이러한 노 보살이 이 부근에 사시는거 모르시요? 그러자 그 집의 노인이 나와서 언덕밑의 집 한체를 가르키며..

저기 저 집인데 오늘은 불이 켜 있지가 않군요.
불이 켜 있으면 그 노인네가 살아있거나 집에 있는 것이고 불이 꺼졌다면 약방에 갔거나 아니면 죽었을 것이요.

법사 스님이 그 소리를 듣고는
호롱불을 하나 빌려 숨이 목에 차도록 뛰어 갔다.

그리고 그 집안에 당도 하니
인기척이 없어 법사 스님이 주인을 불러 본다.

 주인장 계시요 ?
주인장 계시요 ?

아무 대답이없자 법사스님이 토방을 올라 방문을 살며시 열어 보니 분명 누군가가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법사 스님이 호롱 불을 들고 다가가서 이불을 젖히니 어머니가 거의 죽어 가는 모습으로 누워 있는데..

머리 맡에는 언제 먹었던 죽 그릇 인지는 몰라도 바싹 말라서 쩍쩍 갈라져 있었고 방안은 냉기가 흐르고 입에서는 입김이 솟아 나왔다.

그 모습을 보던 법사 스님이 어머니 ~~
그러자 가물 가물 죽어 가던 어머니가 희미한 정신으로
"뉘시요 ? ... 뉘시길래..
나 보고 어머니라 하시오..
그 호롱 불로 ...얼굴좀 비쳐 보구려.."

그때 법사 스님이 호롱 불을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갖다 대자
어머니가 하시는 말..

"이제... 되었오... 어서... 양산 통도사로 빨리 가시어 더 많은 법문으로와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부디 훌륭한 스님이 되시구려. 이제 나는 내 마지막 소원을 들었구려~
어머니 라는 그 말 한 마디 못 듣고 죽을 줄 알었었는데

법사 스님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어머니를 들쳐 업고는 양산 통도사로 뛰기 시작 했었다.

통도사에 도착한 법사 스님이 있는 정성 다 들여 미음을 쑤고 약을 다리어 그 어머니를 살렸고 그렇게 지내던 어머니가 양산 통도사에 온지 3년이 되는 해에 세상을 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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