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게시판

프라하 카를橋의 한글 낙서

namsarang 2016. 8. 20. 09:58

[2030 프리즘] 

 프라하 카를橋의 한글 낙서  


입력 : 2016.08.19 06:27

이미지 산업1부 기자


올여름 휴가로 큰맘 먹고 유럽을 찾았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가이드로부터 쉴 새 없이 주의사항을 들어야 했다. "음식점에서는 식사를 정량만 주문하라." "음식점에 앉아서 손톱을 다듬거나 머리를 빗으면 안 된다." "식당 안에서 맨발로 의자에 발을 올리지 마라." 함께 여행하던 이들이 모두 예의범절 알 만한 성인이고 대부분 지적한 것도 '상식' 수준의 이야기여서 의아했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에서 만난 가이드는 "한국 사람을 받지 않겠다는 음식점이 생길 정도로 한국인의 악명이 높아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올여름 공항 이용객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만큼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아직도 글로벌 매너를 지키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믿기 어려웠다. 내 눈으로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여행 중 한 레스토랑에서 겪은 일이다. 배낭여행 중인 듯한 우리나라 청년들이 밥 먹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양말을 갈아 신었다. 커다란 빗을 들고 머리를 빗다가 빠진 머리카락을 바닥에 버리는 여성도 봤다. 곁에 있던 가이드는 "버스나 전철에서 맨발로 앞 좌석에 발을 올리는 사람들도 십중팔구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어글리 코리안'은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등장했다. 그로부터 거의 한 세대가 지났는데도 우리의 여행 매너 시계는 곳곳에서 멈춰 있었다. 프라하 옛 시청 건물 전망대의 하얀 벽에 까만 매직으로 적힌 낙서는 '○○○ 왔다 간다'는 한글뿐이었고, 블타바 강의 명물 카를교(橋) 난간에도 한글 낙서가 선명했다.



한국의 국가 위상은 그사이 크게 업그레이드됐다. 한국산(産)이 선봉에 섰고, 최근에는 한류가 가세했다. 프라하 역에 내려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은 세계 최대 화장품 유통 체인점 세포라 매장의 '코리안 뷰티'(한국의 미) 기획전이었다. 매장엔 한국 화장품을 알리는 입간판과 홍보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고, 목 좋은 매대 역시 한국 화장품 차지였다. 어느덧 우리도 외국 나가서 한국산 스마트폰, 가전제품을 봤다고 감격해하지 않는다. 인도 관광객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건넨 스마트폰에 삼성 로고가 선명했고, 가이드의 주의사항을 듣던 레스토랑에 설치된 TV는 LG 제품이었다. 한국은 세계인의 생활 속에 자리 잡은 나라가 됐다.

많은 외국인이 한류와 한국 제품에 손뼉 치다가도 한국인을 대할 때는 똑같은 손으로 손사래 친다. 물론 매너를 갖추고, 외국인에게도 호감을 주는 한국인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한국산 제품이 아닌 한국인에게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손뼉을 칠 수 있도록 이제는 '매너 있는 한국인'이라는 새 브랜드를 내놓을 때가 됐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