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지향의 살가운방송 (첫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업지르고 걸어 왔을 때 / 서정주
그 애가 샘에서 물동이의 물을 길어
머리 위에 이고 오는 것을 나는 항용 모시밭
사잇길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동이 깃의 물방울이 그 애의 이마에 들어
그 애 눈썹을 적시고 있을 때는
그 애는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지만
그 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업지르고
조심해 걸어와서 내 앞을 지날 때는
그 애는 내게 눈을 보내
나와 눈을 맞추고
빙그레 소리없이 웃었습니다
아마 그 애는 그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업지르고 걸을 수 있을 때만
나하고 눈을 맞추기로 작정했던 것이겠지요.
아라차차 암탉이 기합을 넣을 때
/ 이지향
모이를 주어도 암탉이
엉거주춤 엉덩이를 낮추어 줍니다
팽그르르 쉴새 없이
눈알을 굴리는 폼새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숨을 죽이고 가만히 들여다 보니
닭이 힘을 줄 때마다 항문이
조금씩 벌어집니다
넓어진 구멍 사이로 상아빛 계란이
얼굴을 갸웃 내밀다가
금새 들어가 버렸습니다
닭은 다시 호홉을 가다듬더니
까칠한 혓바닥을 길게 뽑으면서
아라차차
기합소리 한 번 크게 질렀습니다
대가리의 붉은 볏도 빳빳이
일어서면서 진통을 도왔습니다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두 손바닥을 닭의 항문가에 대고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순간 양수 묻은 달걀이 미끈둥하며
손바닥이 이불인양
벌렁 드러누워버렸습니다
촉촉한 알을 감싸쥐고
급히 닭장문을 나서는데
동그란 갈색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 매달고
암탉은 제 새끼를
물끄러미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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